도시락에 계란 하나만 덮여 있어도 행복해 했던 가난한 시절의 대학생이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책은 돈 아까워하지 않고 흐뭇해하며 구입했다.  책상의 책꽂이에 누가 더 책을 많이 꽂아 두나 내기라도 하듯 열심히 책을 샀다. 제대로 볼 것도 아니면서 책꽂이에 꽂힌 책 그 자체가 행복이었고, 책에 대한 허영과 가식이 대학생의 특권이라도 되는 듯 했다.


  전공도서는 물론이고 교양도서, 특히 문-사-철 계통의 인문서적은 품격의 기준이라도 되는 듯 심지어 자연과학도와 공학도에게 조차 구입도서목록 일 순위였다. 동년배의 10퍼센트 정도만 대학에 진학할 시대의 얘기다. 한 세대라고 칭할 수 있는 삼십년 전 대학생의 책에 대한 의식이었다. 이 당시 국립대 등록금이 십만 원 정도였고 한 달 하숙비가 삼만 원 정도였다.  전공도서는 권 당 평균 오천 원 전후였는데 매학기 평균 도서구입권수는 열권을 넘어섰다.


  이제 한 세대가 흘렀다. 동년배의 10퍼센트 정도만 대학에 진학 못하는 세대다. 삼십년이 지난 지금 등록금, 하숙비, 책값 모두 약 스무 배가 되었다. 요즈음 대학생들은 도서구입비로 한 학기에 백만 원 정도를 투자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가난한 학생도 많다. 점심값과 교통비로 천 원 이천 원 아끼려 싼 식당을 찾아다니고 힘들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도 가난한 대학생의 비율을 따지자면 30년 전이 훨씬 높았다.


  그런데 커피 한 잔에 오천 원이 아깝지 않고 한 달 통신료로 오만 원을 지급하는 학생들이 많다. 옷도 유행에 뒤질 새라 지출이 만만치 않다. 불과 몇 년 전 중고교 시절에는 참고서와 학원비로 한 달에 백만 원이 넘게 지출해 가면서 준비해 들어 온 대학이다.


  현재 부산대학교 학생의 도서구입 실태는 어떤가? 불행히도 이들은 전공도서도 제대로 구입하지 않는다. 2학기 동안 사용하는 전공필수 과목의 교재 (정가 : 이만 오천 원)는 과 선배에게 물려받았거나 복사해서 사용한다. 그것도 저자인 교수가 직접 강의하는데 코앞에서 복사판을 몇 권으로 분철하여 들고 다니다 그 학기가 끝나면서 복사판의 운명도 끝이 난다.


  전공필수 과목의 교재도 이 정도니 전공 선택이나 학점 채우기 위한 과목의 교재도 가히 추측이 된다. 주교재도 안사는 학생이 부교재를 사거나 교양도서를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야말로 대학 4년 동안 도서구입비는 통신료나 옷값, 술값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것이다. 큰 맘 먹고 산 전공도서 한두 권은 후배에 넘기고 나면 졸업 후 몇 권 남는 책은 취업관련 상식 및 영어 교재다. 어차피 취직하는데 전공은 별로 도움이 안 되니 전공도서는 더 천덕꾸러기다. 그렇게 책값 아껴서 알뜰하게 사 년을 보낸 후 얼마나 소중하게 다른 곳에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책 안사는 것이 부산대학교의 오랜 전통이라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스스로 지방대의 촌스러움을 만방에 고하고 있다.

 
  대학의 본질은 학문이다. 미팅하러 들어 온 곳도 아니고 술 마시러 온 곳도 아니고 옷 자랑하러 온 곳도 아니다. 특정 분야에 좀 더 먼저 좀 더 깊이 공부한 교수에게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배우러 온 곳이다. 교수와 학생간의 학문적 매개체는 책이다. 책 사는 것이 아깝고 부끄러워서야 도대체 뭣 하러 대학에 왔는지 묻고 싶다. 이제 제발 책 안사는 부끄러운 촌스러운 부산대학교의 전통은 접어야 한다. 그것도 하루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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