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마을 바꾼 '예술마을 가꾸기'

  서울 성북구 정릉3동은 흔히 말하는 ‘빈촌’이었다. 꼬불꼬불 가파르게 이어진 언덕길과 삭막한 돌담, 오래된 집들과 방치된 쓰레기들. 하지만 지난겨울, 낙후된 마을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맞았다.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 추진한 ‘예술마을 가꾸기’ 사업은 예술단체나 관할 행정청에서 일방적으로 낙후된 곳을 꾸며주는 다른 공공예술 사업과는 다르다. 예술가들의 프로젝트팀 ‘ABC’와 정릉종합사회복지회관,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진행했는데 특히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주민들의 삶과 아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들과 함께 그린 그림으로 마을을 장식했다.

  사업이 진행된 곳은 고대부속중학교 후문에서부터 복지회관을 거쳐 청덕초등학교에 이르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이곳은 아이들의 걸음으로 ‘3분 45초’가 걸린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도 ‘우리들의 꿈이 자라나는 시간, 3분 45초’다. 구역마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그린 타일과 벽화가 있고 담장위에는 직접 만든 공룡들이 있다. 중간 중간 쉬어갈수 있도록 작은 벤치들도 마련돼 있다. 김선주(청덕초 4) 양은 “학교 가는 길이 삭막하고 밋밋해 오르막길이 더 힘들었는데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올라가니 재미도 있고 발걸음도 가벼워요”라고 사업 이후 등굣길의 변화를 자랑했다. 또한 이현지(청덕초 6) 양도 “예술가 선생님들이 그린 그림은 멋있지만 공감이 안 되고 어려웠는데 우리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 더 즐겁게 볼 수 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이번 사업 참여자들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의 송향숙 사회복지사는 “정릉동엔 30년 넘게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많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그래서 노인정 어르신께 직접 동네의 사연과 역사를 들어서 스토리텔링으로 벽화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팀 ‘ABC’의 김새벽 프로그램 매니저는 “정릉동의 특징과 역사를 담아내기 위해 주민들과의 교류와 직접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했다”며 “실제로 사업의 90%가 주민들의 직?간접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광남 주민자치위원장도 “주민들 간에 소통을 통해 공감대 형성되었고,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많은 지역에서 유행처럼 진행됐던 공공미술이 사후 관리 소홀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남상환 주민자치위원은 “관에서 일방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의지와 참여로 진행된 사업이라 관리소홀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웃이나 동네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누가 쓰레기를 버리고 낙서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런 주민들의 노력과 함께 서울문화재단에서는 2년간의 관리 책임을 예술단체에 있도록 규정해서 체계적인 사후관리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아이들에게 숨차고 힘겹기만 했던 ‘3분 45초’의 오르막 등굣길을 즐거움과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은 또 다른 노력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최광철 주민자치위원은 “처음엔 공상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이렇게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문화가 깃든 동네로 바뀌었다”며 “다시 주민들의 힘을 모아서 앞으로 예술 공간을 넓혀나가고 아름다운 꽃밭도 가꿀 예정”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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