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위기와 더불어 한국사회와 경제를 평하는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이 오가고 있다. 특히 공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는 공공영역과 관련해서는 도덕적 해이가 자주 거론된다. 주인 없는 곳이라 종사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귀중한 자원들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자칫 도를 넘어서게 되면 모든 공공영역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는 사유화가 국민적 합의 없이 진행될 수도 있다. 지상파방송에 재벌이나 신문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최근의 미디어법 논쟁이 그 일례다.


  정부ㆍ여당이 내놓은 가장 큰 명분은 지상파독과점으로 인한 여론독점과 일자리 창출, 글로벌 대기업의 육성이다. 방송 영역을 KBS, MBC 같은 지상파방송이 독점함으로써 여론 또한 독점되고, 자유로운 투자를 막음으로써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이렇게 규제가 많은 곳에서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매우 문제가 많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지상파독점≒여론독점론은 앞뒤가 안 맞는다. 왜냐하면 같은 개정안에서 신문 또한 방송을 겸영할 수 있게 길을 터놓았는데 이 또한 여론독점에 대한 우려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여당이 정말 여론 독점을 겁낸다면 신문의 방송 진출 또한 계속 막아두어야 일관성이 있다.


  일자리 창출 역시 기존의 주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부ㆍ여당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그간 정부ㆍ여당이 주장해 온 방송영역에서의 도덕적 해이, 즉 ‘노동자(또는 노조) 우위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리다. 기존 방송에는 감시의 눈이 없어 일 안하고 높은 봉급을 받는 유휴인력이 상당수 있으며, 따라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나라당이 외쳐온 ‘지론’이다. 그런데 이런 방송에 재벌이나 신문이 참여하면 당연히 일자리는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늘어나기보다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 게 맞다. 과도한 인건비 때문에 이윤이 남지 않는 방송에 재벌이 투자할 리 없고, 신문은 이미 자체 내에 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기업이 만들어진다는 논리는 돈이 없으니 재벌이 필요하다는 그야말로 상식적인 발상 외에 아무 것도 아닌 논리다. 이게 성립되려면 신문 또는 재벌에 이 분야의 글로벌 대기업이 갖고 있는 공통적 요소, 이를테면 돈, 전문성, 브랜드 등이 있어야 하는데, 신문이나 재벌에 있는 것은 재벌의 돈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법을 개정하는 것은 법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일텐데, 현행법에서도 재벌이 마음만 먹으면 글로벌 대기업이 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므로 왜 굳이 법을 개정하려 드는지 속내가 궁금해진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글로벌 대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인 한류에 재벌이 투자하거나 참여하는 데는 지금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


  100일의 논의 마당인 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주변에서 보는 시각이 다소 차가운 이유는 논의의 대상인 이 법 자체가 가진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물론 방송이라 해서 논의 자체를 막아야 한다거나 과거의 법체계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밑그림을 좀 더 치밀하게 그려놓고 시작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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