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온 고 최고은 작가의 아사(餓死) 소식.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쪽지를 옆집에 붙인 채 최 작가는 경제대국 10위권에 ‘입성한’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었다.


  이 죽음은 ‘돈 많은 자에게는 돈을, 돈 없는 자에게는 눈물을’ 주는 신자유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 예술계 전반에 대해 여러 언론과 네티즌들의 뒤늦은 각성을 불러왔다. 신자유주의의 승자독식 구조가 주연배우에게는 수억 원의 출연료를, 스태프와 무명배우에게는 눈물 젖은 빵 값도 대주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있으니 지난 11월에 뇌출혈로 쓰러져 목숨을 잃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고 이진원 씨(이하 달빛요정)의 죽음이 떠오른다. 그는 죽기 전 ‘도토리 문제’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도토리, 이건 먹을 수도 없는 껍데기, 이걸로 뭘 하란 말이야…일주일에 단 하루만 고기 반찬 먹게 해줘. 도토리 싫어, 라면도 싫어, 다람쥐 반찬 싫어, 고기 반찬이 좋아….’ 달빛요정의 3집 앨범의 ‘도토리’ 중 일부 가사다. 2004년 싸이월드 배경음악에 달빛요정의 음악이 인기를 끌었지만 판매 수익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원료를 도토리로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디지털 음원사 SK커뮤니케이션즈는 단지 수익의 문제로 대하는 것에 분노한 달빛요정은 ‘도토리’라는 곡을 만들었고 ‘알만한 사람’들은 함께 분노했다.


  이처럼 거대 자본의 횡포에 예술인의 생사가 갈리는 문제는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복지과잉’이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도 그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복지가 넘쳐나는 사회라면 돈 없고 빽(?) 없는 아티스트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은 보장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고기를 못 먹어 슬퍼하고 김치를 먹기 위해 창피함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사라져야 한다. 무척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야만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풍부해질 수 있다. 무한한 창의력과 열정의 보고인 문화·예술의 장에 자본의 논리가 도입되면 돈이 풍부한 소수에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대다수의 돈 없는 예술인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땅에는 거대 자본으로 둘러싸인 아이돌만 넘쳐나고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콧대 높은 배우들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예술 현실이 지금보다도 더 어두워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술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현실이 확실시되고 있는 이때,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예술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공정한 음원거래를 통해 아티스트들에게 정당하게 노력의 대가를 지불해주려는 인터넷 사이트가 구축되고 있다. ‘아마추어증폭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립음악가 한받 씨는 작년 5월부터 동료들과 자립음악가생산자 모임을 만들었고 현재는 이 사이트 구축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소식이다. 문화소비자라면 자본으로 중무장한 사이트의 먹잇감이 되지 말고 공정하고 윤리적인 아마추어증폭기의 사이트에서 음악을 다운받아 진정한 예술인에게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돈도 없지만 열정과 창의력만은 넘쳐나는 아티스트가 최소한이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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