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정기 보급으로 한해를 살아가야 하는 월동대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을 먹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해집니다. 매년 여름, 새로운 월동대원들이 선발되면 식자재를 비롯한 여러 생필품들을 선적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음식들은 냉동, 냉장 및 건조시키기 때문에 실제 표기된 유통기간보다 길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하기 쉬운 채소와 우유, 계란과 같은 품목들은 가까운 칠레나 남미를 통해 보급을 받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수개월이 넘는 긴 수송 끝에 도착한 음식을 보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세종기지의 구내식당 ‘세종회관’에서는 한식은 물론 양식, 중식, 일식까지 다양하게 제공됩니다. 식사시간은 한국과 비슷한데 아침식사는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점심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 저녁은 오후 6시부터 7시까지입니다. 단기 체류가 많은 여름에는 원활한 연구지원을 위해 월동대원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하계연구원들이 나중에 식사를 하는 등 분산 작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식단은 밥과 국을 기본으로 5가지 이상의 반찬이 나오며 요리대원의 정성이 가득 담긴 미소가 양념으로 뿌려집니다. 월동대원들만 남게 되는 겨울에는 더욱 고단백, 고열량의 음식들을 먹게 되는데 이는 체감온도가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는 탓에 잘 먹어야 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기지에서는 별다른 주전부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나 칠레에서 들여오는 과일이 대부분인데 이마저도 재보급을 받을 때가 되면 남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기고한 운명을 타고난 대원들의 즐거움이 바로 빙하로 만든 팥빙수를 먹는 일입니다. 


북풍이 불어 빙하 조각이 밀려오면 세종기지 앞은 유빙으로 가득합니다. 남극의 얼음은 한국에서 보는 얼음보다 더 푸르고, 더 많은 기포가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나중에 내린 눈이 먼저 내린 눈을 누르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기포가 도망가지 못하고 압착되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짧게는 수천 년, 길게는 수만 년이나 된 이 얼음들은 냉국수를 만들거나 회식을 할 때에도 더 없이 좋은 재료가 돼 남극 특유의 맛을 더해 줍니다. 호기심 많은 대원들은 50만 년 전 공기를 마시겠다며 숨을 들이켜 보기도 합니다. 남극에서 팥빙수를, 그것도 빙하로 팥빙수를 만들어 먹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연중 강한 바람과 추위로 인해 녹색 식물이란 보기 힘든 세종기지에 식물농장이라고 부르는 작은 온실이 있는데 식물 재배실험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재배실은 변화무쌍한 남극의 날씨에도 식물이 자라기 좋은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수경재배 방식입니다. 매달 작은 양이지만 1~2번 정도는 상추와 깻잎 등을 키워 먹을 수 있어 채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남극에서 월동대원들의 정서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인근의 외국 연구기지에서도 세종기지의 온실을 너무도 부러워하는데 남극에서 먹는 아삭아삭한 상추쌈이란, 정말 최고입니다! 이렇게 남극에서는 일상의 평범한 음식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늘 먹던 학교 앞 양푼이 팥빙수와 상추쌈이 그립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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