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는 1909년 한국 최초로 신문에 연재된 이도영의 <삽화>를 시작으로 신문을 통해 단발기고, 연재물의 형태로 꾸준히 발표됐다. 한국만화는 1930년대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 1950년대 한국전쟁 동난 속에서도 인기를 유지했지만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시작된 사전검열제도와 출판사의 독점체계로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996년에는 만화책이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청소년 유해물’로 분류되기까지 했다. 한국만화는 이렇게 지난한 세월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발전해 80~90년대는 ‘한국만화의 전성기’라고 불렸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현세, 허영만, 강경옥, 한유랑, 황미나 같은 작가들이 발전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화려한 역사도 옛말이다. 한국만화에 관해 취재하던 중에 만난 만화 애호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의 한국만화 시장을 ‘최악’이라 칭했다. 신인 만화작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일본에서 데뷔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한국만화계가 ‘한국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신인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묵살하기 때문이었다.

  한 때 만화는 청소년 유해물이었고 이제는 방송에 일명 ‘십덕후’가 나오니 만화와 만화 마니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우리학교 만화동아리인 ‘A-Heart’ 회원들을 취재하는 도중 옆에 있던 ‘A-Heart’ 회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동아리 가입을 문의하는 전화였다. 만화를 대하는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동아리 공개모집에서는 대놓고 관심을 표하지 못하고 동아리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취재 중에 만난 우리학교 학생들은 만화책은 보지 않지만 웹툰을 즐겨보고, 대표적인 한국만화는 모르면서 인기 있는 일본만화 이름은 외우고 있었다. 필자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 만화책, 그 중 한국 만화책을 읽어본 지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했고 취재를 위해 만화방도 난생 처음 가보았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편견과 다르게 만화방은 공부에 지친 학생들의 쉼터였다.

  진정으로 ‘한국적인’ 만화를 발전시킨다면 한국만화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날이 올 것이다. 편견으로 점철된 시선은 이제 털어버리고 지금은 ‘최악’인 만화시장을 안정시킨다면 한국만화가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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