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존재론적 결핍을 느낀다. 그것이 삶의 권태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욕망을 부르기도 한다. 권태와 욕망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로울 때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가. 지혜로운 자라면 ‘지금 여기’를 잠시 떠나라고 충고할 것이다. 떠남, 그것은 여행을 의미한다. 별도의 시간과 공간으로, 즉 다른 곳으로 향하는 일이다. 여행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음속의 상상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의 여행이다.


  상상여행은 몽상을 하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을 과거 속으로 혹은 미래로 옮겨놓는 일이다. 과거라면 회상하며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고, 미래라면 공상을 통해 새로운 삶을 기획해 보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몽상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책은 매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잠시 발품을 팔면 누구나 책방에 다가갈 수 있다. 그곳에는 여행지도에서 백과사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료들이 있다. 예기치 않은 신간 서적에서 경이로운 세계, 야생적 사유의 단초를 발견할 수도 있다. 나의 정신이 낯선 정신을 만나 내적 논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살아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하거나 삶의 방향을 바꿔주는 글도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상상여행의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당장 서점 속을 산책하자. 잉크냄새 풍기는 책갈피에서 단어들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오랜 숙고 끝에 여문 타인의 진솔한 얘기들이 귓가에 맴돈다. 시, 소설, 수필, 자기계발서, 고전에세이...금세 정신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실제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행복하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마음은 공기보다 가볍다. 그래서 기차역이나 공항, 항구는 언제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미지의 장소로 향하는 설렘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하다. 지도를 바라보는 시선속엔 호기심이 녹아 있다. 어디로 갈까, 누구와 갈까, 무엇을 준비할까. 이미 몽상이 시작된다. 다른 곳의 색, 맛, 기후, 사람, 느낌을 체험하는 일은 살아있는 책읽기다. 꿈이 있는 삶인 것이다. 몽상가란 삶과 꿈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이다. 그는 시인인 것이다. 여행은 천천히 음미하며 사색에 잠기는 듯 이동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집단이 아니라 홀로 하는 여행,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은 사적인 체험이라야 맛깔스럽다. 사랑이 그러하듯 여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몽상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한 탁월한 책들이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꿈꿀 권리>, <공간의 시학>, <물과 꿈>(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 등이 그것들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요 철학자이다. 그의 책속에는 사유, 삶, 허구, 지식들이 하나의 몸인 듯 뒤섞여 있다. 그의 언어를 따라가면 오랜 상상력의 도정 끝에 도달한 관조적 세계의 심오한 울림을 공유할 수 있다. 깊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 자격이 있다. 몽상은 신선한 삶이 솟아나는 옹달샘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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