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히 이곳으로 실려온 것이 아니다. 나는 있어야 하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부쩍 축구중계가 많아졌다. K리그는 물론이고 스페인, 독일, 영국 리그 등 집에 앉아서 세계 각국의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다. 채널을 돌리다 간혹 관심 있는 팀들의 경기가 눈길을 끄는데, 이 팀들이 승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간밤에도 잠이 달아나 잠깐 TV앞에 앉았다가 우연히 축구 경기를 보게 됐다. 전반 20분이 막 지나고 있었는데 스코어는 0:1, 뒤지고 있었다. 이 팀은 경기 초반 어이없이 한 골을 주고 뒤처지더니 결국 후반에 두 골을 몰아 넣고는 1승을 챙겼다. 해설자는 역전승이라고 하고, 역시 실력 차이가 난다고도 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남성 77세, 여성은 83세에 이른다고 한다.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있으니 이런 추세라면 요즘 젊은이들은 평균 90세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평균 수명이 25세 정도,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45세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삼신할머니 랜덤’으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누구 덕인지 우리는 조상들에 비해 두 배의 시간을 허락받고 태어나는 셈이다.


  평균수명 90세. 마침 전후반 90분을 소화하는 축구를 빚대어 보니, 어쩌면 우리는 90년짜리 시합을 뛰는 축구 선수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경기장에 들어온 탓에 헛발질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즉, 미리 훈련된 것이 아니라 경기를 치르는 동안에 공 차는 법, 상대를 막는 법을 배우면서 90분을 뛴다는 것이다.


  그 90분 동안 어떤 이는 골을 성공해 화려하게 빛나기도 하고, 딱히 부각되지는 않지만 착실한 수비수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캠퍼스는 요즘 경기장에 들어온 지 채 20분도 안 된 선수들로 활기차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새내기들이다. 난생처음 공을 차보는 탓에 지난 20분 동안은 숱하게 넘어지고 헛발질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의도하지 않은 파울로 경고 하나쯤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헛발질 한번 했다고 해서 경기장에서 쫓겨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제 겨우 전반 20분을 뛰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고 경기는 언제든 이길 수 있다. 함께 뛰어주는 동료들이 있고, 단련하고 격려해 주는 코치들이 있고 힘껏 박수 쳐 주는 응원단이 있다.


  이제 전반 20분이 막 지났을 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현재 스코어가 0대 1쯤으로 뒤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몸이 풀리는 즈음일 터이니 집중력만 잃지 않는다면 기회는 언제든 만들 수 있고 경기는 뒤집을 수 있다. 이제 겨우 전반 2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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