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지진 관측 역사상 발생빈도가 희박한 규모 9.0의 초거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규모 9.0은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00년 이후 발생한 대지진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한다. 지진은 다른 천재지변과는 달리 인간이 어떻게 대처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의 무서운 재앙이다. 재라도 남기는 불난리와는 달리 흔적도 없이 모든 걸 쓸어가 버리는 쓰나미와, 원전 방사능 확산 위기까지 동반한 이번 지진은 일본열도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도 남을만한 것이었다. TV로 전해지는 해일 순간의 장면은 그동안 픽션이라고 생각하며 재미로 봐왔던 재난영화의 장면들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줬다.


  일본과의 악연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로 볼 때 일본이 당한 작금의 재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다양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안됐지만 가슴으로는 ‘하늘의 저주일 것이다’라고 하는 한 쪽의 극단적인 시선이 있는가 하면,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으니 인류애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두 팔을 걷고 위로와 도움을 줘야 한다’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엇갈린 심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재앙에 대응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일본사람들의 자세와 태도인 듯하다.


  저런 대참사 앞에서 저들은 어찌 그리 침착할 수 있을까? 가족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도 굳이 오열을 억누르는 냉정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남을 배려한다는 것이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 난민 대피소에 들어서면서 불편함에 대한 불평은커녕 남에게 신세지게 되었음에 대해 미안함을 표하는 어느 노파의 한마디는 TV를 보던 우리들을 거의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도쿄의 기차역 광장에 가방을 하루 종일 놓아도 집어가는 사람이 없으며, 지하철을 탈 때면 으레 습관적으로 줄을 서고 지하철 안에서는 다리를 벌리거나 꼬지 않고 심지어 신문도 반으로 접어 읽으며,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 때는 그저 일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우리들의 것과는 다른 것이라 하면서 흘렸었다. 하지만 평상시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서도 그들은 침착했고, 냉정했으며, 남들을 배려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몸에 밴 기본의식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런 일본인들의 태도를 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만 의식하는 위선적인 행동이라며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도의 공황 상태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기 목숨이 풍전등화인데도 남들을 배려하는 차원이라 한다면 이는 아마도 보통 사람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혼돈 속에서 지켜지는 질서는 누가 뭐래도 마땅히 존중돼야 할 덕목이다. 후쿠시마 주민들의 침착함과 절제가 없었다면 이번 사태는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수년전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타리나 때 미국인들이 보여준 약탈과 폭동, 무질서를 돌이켜 볼 때, 이번에 일본 지진에서 목격한 그들의 성숙해 보이는 시민의식은 더욱 빛나 보이고,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에 다시 한 번 마음으로부터의 위로를 표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루빨리 이 엄청난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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