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서북쪽, 사우스셰틀랜드제도 킹조지 섬(넬슨 섬 포함)에는 세종기지를 포함한 8개국의 남극기지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위 60도 이남에서 상주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나라가 20개국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곳은 남극에서도 연구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미대륙과 가깝다는 이유 때문인지 1954년 아르헨티나를 선두로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기지를 비롯한 중국, 폴란드, 러시아 기지들이 앞 다투어 들어섰고, 1988년 세종기지가 건설되었습니다. 보통 자국 영토와 가까운 남미 국가들은 군인들에 의해 기지가 유지되고 있는 반면, 거리가 먼 나라들은 과학자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킹조지 섬의 남극 기지들은 대부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지명을 따서 부여되었는데, 러시아의 벨링스하우젠 기지는 1819년 남극해를 탐험하고 알렉산더 섬을 발견한 러시아 탐험가 벨링스하우젠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중국의 장성(長成, Great Wall) 기지도 만리장성을 모태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각국 기지의 월동대원들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함께 겨울을 난다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모두가 한 가족처럼 협동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연구교류는 물론이고, 사적인 경조사에도 언제나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기쁨을 나눕니다.


얼마 전에는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러시아 기지 월동대원이 남극에서 결혼식을 연 이색적인 축제가 있었습니다. 강풍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킹조지 섬에 있는 모든 기지의 대원들이 러시아 기지를 방문했고 이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푸른 빙하를 하객으로 치러진 남극의 결혼식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캠퍼스에 땀방울이 맺히고 여름을 맞이할 때, 남극에서는 추운 동지를 맞이합니다. 불과 몇 시간 되지 않는 여명에 의지하며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시기입니다. 바로 이때 열리는 킹조지 섬의 체육대회, 이른바 ‘남극올림픽’은 완벽한 겨울잠에 빠진 월동대원들을 화끈하게 깨워줍니다.


남극올림픽은 1991년 칠레 기지가 상당히 큰 실내 체육관을 지어 가능하게 되었는데, 비록 겨울을 잘 보내자는 친선활동이지만 각국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최선을 다합니다. 주로 탁구, 배드민턴, 미니축구, 농구 같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종목들이 대부분이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야외에서 만년설 스키대회를 열기도 합니다. 세종기지는 남미 축구, 중국 탁구, 그리고 서양의 신체적 열세 속에서도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기염을 토해 주변 기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할수록 승부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이렇게 남극에서는 작은 온기도 더욱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바다가 얼고 겨울이 되면 거의 만날 수 없겠지만, 서로의 작은 소식도 기뻐하고 슬퍼하는 남극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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