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동구 지역, 주민과 ‘착한지구인’이 손을 잡고 되살린다

활기찼던 과거,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추다
  1970년 중반까지는 마을 앞뒤로 자리 잡은 고무공장과 부둣가에 일자리가 많았고 그런 까
닭으로 피난민들이 세운 마을은 젊은이들로 가득해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고무
공장은 사라지고 부둣가에서도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재개발을 둘러싼 잡음
은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착을 흔들어 놓았다. 그렇게 주민들은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갔고
마을의 시간은 삼십여 년 전에 지어진 낡은 주택들의 모습 그대로 멈춰 버렸다. 

 

멈춰 버린 마을, 열악한 생활환경 
  동구 초량동 일대는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 중 하나이다. 실제로 기자가 초량동
구계산 중턱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금이 가고 페인트칠이 심하게
벗겨진 빛바랜 건물들이었다. 삼십 년도 더 지난 건물들은 한 눈에 보아도 안전상에 큰 문제
가 있어 보였다. 곳곳에 빈집이 자리 잡고 있었고 빈집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약국이나 목욕탕 같은 기초적인 편의시설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을 구석구석 이
어진 가파른 골목길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과 집 없는 고양이만 더러 보일 뿐, 더 이상 마
을에서 젊은 사람들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마을에서 67년 째 살고 있다는 성일영
(초량동, 73)씨는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 때는 젊은이들이 많아 마을이 활기찼어”라
며 “예전처럼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활기가 넘쳤던 마을의 지난날
을 회상했다.
 
시계태엽을 다시 감다
  이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동구, 그러나 그곳에서 멈추어버린 시계바늘을 다시 움직이려는 사
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을 되살리고 싶다는 지역 주민들의 소망에 그들
을 돕는 착한지구인들의 노력이 더해져, 시계 바늘 초침의 작지만 위대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
이다.


  그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할매 레스토랑이다. 변변한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마을에 지
난 달 17일 개업한 할매 레스토랑은 지식경제부 지역 공동체 사업체로 선정된 착한지구인 컴
퍼니가 주관하는 사업이다. 할머니가 직접 차려주는 따뜻한 국수와 주먹밥을 파는 이 식당은
주변의 평범한 식당과는 달리 지역 공동체를 위한 식당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개점한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외지인들이 찾아올 정도로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처음 할매 레스토랑 사업을 기획한 이현정 착한지구인 컴퍼니 대표는 “동구 지역이 뛰어난
경관과 접근성을 가진데 비해 잘 알려지지 않고 낙후된 현실이 안타까웠다”라며 “올해 안에 5
호점을 개점하고 싶다”라고 동구를 사업 무대로 선정한 이유와 목표를 밝혔다. 착한지구인 컴
퍼니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우리학교 박성규(사학 4)씨는 “주민들 사이에 유대감이 부족하
고 마을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 처음에는 주민들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더니 주민들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지역 공동체 사업에 대한 지속적 관
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산북항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계산 마을의 빼어난 조망권을 이용하여 마을을
활성화 시키려는 계획도 있다. 마을에서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많은 빈집을 전망대로 개
조하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부산시에서 시행하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중 하나인 마을만들기 사업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한 마을 주민은 “태극마을처럼 우
리 마을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 
  물론 이러한 노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주민은 “이런
사업보다는 재개발이 이뤄지는 게 어려운 주민 형편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금 하는 레스
토랑은 사업주의 자기 주머니 불리기에 불과해 보인다”고 사업이 주민 전체에게 이익을 주는
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30여 년째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전임 통장 김재길 (초량동, 76)씨는 “아직 많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동네를 찾는 관광객들이 더 많아졌다”면서 “이러한 사업이 활성화 되어 마을
이 다시 활기를 되찾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이제 다시 시간이 흐를 시간이다
  앞으로 더 이상 부둣가의 일자리와 고무공장 가동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일자리를 좇아 젊은
이들이 마을에 돌아오길 바라기보다는 주민 스스로 마을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나설 때가 된
것이다. 앞서 나온 시도들은 자립을 위한 미약하지만 중요한 첫 걸음이다. 아직은 작은 걸음
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조용한 발걸음들이 모인다면 다시 예전의 활기찬 그 때로 돌아갈 수 있
지 않을까? 동구 구계산 마을의 조용하지만 유쾌한 행진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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