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에 찾은 자갈치시장은 한산했다. 경매장 옆 가판대를 지키고 있던 서정숙(남포동, 57) 씨는 “사람들로 붐비는 자갈치시장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왔다는 최민성(성균관대 영어영문 2) 씨는 “자갈치시장이 부산의 명소라고 들었는데 옛말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은 국제시장도 다르지 않다. 주말이라 남포동 일대는 사람들로 북적였으나 국제시장 안은 썰렁했다. 수입산 과자를 판매하고 있는 강현숙(대저동, 48) 씨는 “관광객은 종종 방문하지만 과자를 구입하는 손님은 극히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이어 방문한 몇몇 상점도 다를 바가 없었다. 손님의 방문으로 바쁜 상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포동 일대 상권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2009년, 롯데백화점 광복점 개점을 앞두고 상인들은 ‘상권 보호’를 요구하며 반대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ㅇ(수정동, 43) 씨는 “2009년에도 남포동의 상권 몰락이 우려돼 광복점 개점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백화점이 생기자 유동인구는 늘었으나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롯데마트 광복점은 2014년 개점을 앞두고 있다. 이에 남포동 일대 상인들은 또 다시 긴장하며 투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 롯데마트 개점과 관련해 계속해서 갈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자갈치시장 어패류조합 총무과 관계자는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 규모인 남포동 일대 상인들은 경쟁을 할 수 없다”며 “생존권을 위협하는 롯데마트 개점을 기필코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포시장 상권 몰락 우려돼…
  4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구포시장 역시 홈플러스 입점과 관련해 북구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상인들은 “재래시장은 지역경제를 살려주지만 외국기업인 홈플러스는 전혀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일, 구포시장 일대 상인 80여명은 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집회에 참가한 박종대(덕천동, 55) 씨는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구포시장이 외국기업에 잠식당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구포시장상인회 박헌영 회장은 “구포시장과 3.4km 떨어진 금곡동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개점하자 구포시장 매출의 34%가 감소했다”며 “홈플러스 개점 이후에는 또 다시 30% 가량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홈플러스 덕천점은 구포시장과 불과 8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입점할 예정이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SSM 규제법 개정안에 따르면 재래시장 반경 1km 내에 기업형 슈퍼마켓은 위치할 수 없다. 그러나 홈플러스 덕천점은 개정 이전 SSM 규제법을 적용받아 건립허가를 받았다.


  한편, 홈플러스 입점을 추진하고 있는 L사는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가 아니라 일반 대형마트 형태인 덕천마트가 들어설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박헌영 회장은 “L사가 홈플러스 입점을 위해 6년 전부터 북구청과 이야기를 해왔다”며 “북구청과 회사 측은 SSM 규제법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건립을 추진해 대형할인점과 재래시장의 상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SM 규제법 개정안, 효과는 미지수
  지난 5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한ㆍEU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전제조건인 유통산업발전법(이하 SSM 규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국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의 신규 입점 제한 범위를 기존 500m에서 1km로 확대할 것, 법안의 일몰 기한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자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소상인들을 달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청 시장상권과 이상창 팀장은 “허가를 받는 주최가 얼마든지 용도나 명의를 숨길 수 있다”며 “결국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의 의미 규정도 모호하고 제재도 미약하니 법 자체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법안 실행을 지자체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점 역시 허점으로 남아있다. 시장경영진흥원 상권연구원 홍은영 연구위원은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지자체에 법의 실행 주도권을 넘기니 법의 효력이 발휘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자체가 재래시장 및 주변 상권을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상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허점으로 인해 지난 5월까지 전통상업보존구역을 지정한 지자체는 123곳에 불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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