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이하 총학)은 전체 학생을 대표는 학생자치기구로서 학생들의 총의를 모아 학교 측에 전달하고, 학생들의 권리신장을 위하여 가장 앞장서서 행동할 수 있는 기구다. 따라서 총학은 학교 내의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한다.

  79년 부마항쟁에서 우리학교 학생들은 유신체제 타파를 외쳤고 그 중심에는 총학이 있었다. 80년대 우리학교 총학은 학내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88년 20대 총학은 교과과정 개정, 기성회비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하며 학생들을 향해 “끊임없는 투쟁”을 약속했다. 90년대 중반 총학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을 통해 타 대학과 함께 조국 통일, 학원자주화를 위한 활동을 벌였다. 세월이 흘러 2000년대에는 총학의 활동이 대학생의 ‘현실’과 밀접해졌다. 37대 총학은 총학 평가 설문 결과 가장 잘했다고 평가받는 분야는 중앙 도서관 사물함 설치 등을 비롯한 학생복지 사업이었다. 또한 등록금 인상분 전면 재조정 등을 요구하는 학생 총회를 개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37대 총학이 18년 만에 학생 총회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학내 여론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당시 본부는 대학시설 노동조합 부산대지부 소속 노동자들을 정리 해고하고 그 과정에서 학내에 ‘용역깡패’를 동원했다. 뿐만 아니라 신입생과 재학생의 등록금 인상 비율을 차등적으로 정하는 등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이에 학생들이 불만이 증폭됐고 학생들의 대변기구로서 총학이 나선 것이다.

  반면, 총학이 선출돼지 않아 곤욕을 겪었던 해도 있었다. 지난해는 3월 재선거를 통해 총학이 선출됐다. 정상적으로 11월에 선거로 선출된 총학이 입학식을 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학식을 준비한 것은 비상대책위원회였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기획부장이었던 42대 총학 강성민(언어정보 4) 회장은 “총학이 없다는 이유로 본부가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았다”며 “단대학생회비로 비용을 충당했기 때문에 예년보다 입학식의 규모가 작았다”고 아쉬워했다.

43대 총학 김종현(수학 4) 회장은 “학우들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학우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총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총학은 ‘세상에 당신을 더한다’는 슬로건으로 활동 하고 있다. 한진 해고노동자문제, 반값등록금 등이 학생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에 사회참여를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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