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하워드/ 천사와 악마
 

  우리는 우리와 다른 기반에 세워진 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그 기반이 우리가 서 있는 기반과 함께 존립할 수 없다면, 또 서 있는 기반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면 그 기반을 부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타 종교에 대한 증오가 낳은 십자군 전쟁. 이념의 근본이 달라 생긴 냉전. 우리는 기반의 확신성을 인정하려고 이렇게 노력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타 기반의 방향으로 동화되어 순수성을 잃거나, 구성원의 전향으로 인한 자괴의 길을 나둘 수는 없다’고.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발상 전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봐야할 것이다. ‘정말 그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기반이 파괴되거나 변질되는가?’ 사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기 머뭇거린다.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그것과의 공존을 전제 함으로써, 지지하는 기반에 대한 죄악을 저지른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맹목적으로 반감을 가질 뿐이다. 필요한 질문은 묵살되고, 혹자와 같은 입장을 가진 두 집단은 서로를 엉켜 잡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낸다.

  천사와 악마에서는 ‘일루미나티’라는 과거의 종교가 박해했던 집단이 등장한다. 일루미나티는 강성해진 현대사회 과학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며 교황청을 위협한다. 종교의 민중대표인 교황청은 위협을 묵살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고대의식인 ‘콘클라베’를 거행한다. 교황선출을 지켜보기 위해 민중들은 교황청 건물을 둘러싼다. 수많은 민중들마저 위험에 빠진 것으로 판단한 주인공은 안간힘을 쓰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의 현실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청으로 표상화 된 종교와 민중들, 즉 우리들은 한 숙명을 가졌다. 하지만 정작 종교를 이끌어 나가는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의 구성원으로써 혹은 그 영향력을 받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어리석은 것과 순수한 죄악은 다르다. 종교가 수많은 관념만을 쫓는 것과 과학이 완전히 길들어 지지 않는 동물마냥 날뛰는 것은 순수한 죄악과 다르다. 이 영화는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와 지표를 보여주고 있지만 흐릿할 뿐이다. 하지만 영화 속 그려지고 있는 순수한 죄악, 검디 검은 이 죄악은 색채가 뚜렷히 대비된다. 작가는 궁극적인 결론을 말해주기 전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존할 수 없지만 공존하고 있는 종교와 과학을 보면서, 또한 그 연결고리가 무한한 두 기반을 보면서 우리는 더 이상 혹자의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배척하지 않고 화합하라’는 이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보면서, 종교인으로써 그리고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부생으로써 가져야 할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세상의 진정한 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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