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은 높은 파도를 안고 달려오는 남색 바다가 떠오르는 날이었다. 부쩍 차가워진 바람,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에도 비장한 표정으로 넉넉한터를 지키고 있는 5,440명의 학생들과 바람에 휘날리는 학과의 깃발들 때문이었다.


  부대신문 1427호에도 보도된 바 있듯이 처음에는 학생총회에 대한 총학생회(이하 총학)의 홍보가 효율적이지 못해 학생총회가 성사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실제로 △학생총회 판흐름과 공결 범위가 학생총회 이틀 전에 확정된 점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의 취약한 결합성 △학생총회 효력의 홍보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결국 이 우려대로 학생총회 성사 정족수 4,922명 중 400명이 부족해 학생총회는 무산됐고 총학이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며 울음으로 답했다. 그 순간 학생들이 ‘괜찮아’, ‘데려와’를 외쳤다. 이에 총학은 그때까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제2도서관으로 향했고 30분 후 순식간에 1,000명이 불어나 학생총회는 성사될 수 있었다.


  중도행을 선택한 총학이 이후 우리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일부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넉넉한터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학생들이 끝까지 기다리면서까지 학생총회를 성사시킨 이유는 공통의 그 무엇,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학생총회는 총학생회칙에 의거해 학생사회의 주요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학생들의 최고의사결정기구라는 점에서 큰 효력과 의미를 갖는다. ‘눈을 떠도 코 베어 간다’는 속담을 절감하는 학생들은 갑작스레 통합을 추진한 총장과 대학본부의 독단적인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유례없는 대거인원 5,440명의 학생들이 모여 ‘학생 의견 수렴 없는 비민주적 통합 반대!’와 ‘총장 선출 학생투표권 쟁취’ 등을 외쳤다.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니 ‘효원인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학교에서 처음으로 학생총회가 성사된 지난 1987년 이후 다섯 번째로 성사됐다는 경이감 때문이었는지 과거보다 취업이나 개인이 더 중요시되는 오늘날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모여 학생총회가 성사됐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전문가들도 다른 대학교의 학생총회 성립 정족수가 전체 학생의 1/8, 1/10 정도인데 비해 우리학교는 재학인원의 1/4이라 요건이 까다로운데도 성사해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총회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려주던 것처럼 필자도 다른 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들과 개설한 휴대전화 단체 채팅방에 그 상황을 빠르게 전달하고 있었다. 학생들로 가득 메운 넉넉한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저희 학교는 반값등록금 집회에 8명이 참여했는데 부럽네요’, ‘멋있네요! 부대!’, ‘부산대 깨어있네요! 희망이 보입니다’ 등 칭찬 일색이었다. 앞으로 타 대학에서 학생총회가 개최될 때도 이번 우리학교 학생총회는 학내민주주의를 향한 학생들의 갈망이라는 예시로 전 세계 대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다 함께 비표를 들며 구호를 외치던 그날의 함성, 그날의 바람, 그날의 체온, 그날의 가슴을 지금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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