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화예술단 ‘일터’ 배우 박령순 씨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한진중공업 85호크레인 아래서 공연을 하는 박령순 씨. 그는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에서 만 16년 째 배우활동을 하고 있다. 잠시 대학을 다니며 노래패에서 반주 활동을 했다는 그는 “처음 일터에 들어왔을 땐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노래패에 관심이 많았다는 령순 씨는 당시 유명했던 희망새나 꽃다지 등 노래패에 들어가고자 했다고. 이왕이면 부산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곳에서 활동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진숙이 누나’가 얼른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9개월 째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박령순 씨를 만나봤다.

현재 몸담고 있는 ‘일터’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릴게요
  노동문화예술단 ‘일터’는 노동문화를 단순 연극보다 춤, 노래, 풍물 등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극단이에요. 1984년 즈음부터 이름 없이 부산문화패연합과 함께 이름 없이 활동하다가 1987년부터 ‘일터’라는 이름을 내걸었어요. 일터라는 이름을 사용한 건 24년 됐네요. 그 당시엔 마당극이 활발했던 시기라 저희 역시 마당극 중심으로 공연했죠. 마당극은 음악과 춤으로 이뤄진 전통 연희에요. 최근에는 이를 확대해 현대 뮤지컬로 바꿔서 활동하고 있어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요?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1987년 6월 항쟁, 88년 전교조 사태를 겪었어요. 당시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전교조 창립기념식에서 축하 시를 읽었다고 잘렸어요. 전교조에 가입한 다른 선생님들도 다 해임됐죠. 그때 공립 고등학교 최초로 “우리 선생님 내 놓아라”며 데모를 했어요.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건 다름 아닌 1987년 6월 항쟁이었죠. 87년 항쟁 직전에 전교조 사태 때 해임됐던 선생님께서 저에게 5.18 광주 민주화항쟁 이야기를 처음 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여기저기 찾아보며 5.18이 어떤 사건인지 알 수 있었죠.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초창기 민중가요를 알려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는데 그 노래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저한테 꽂힌 거죠.

  사실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나 일터가 주로 활동하는 노동 현장이나 운동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들과 만나며 그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어요.

한진중공업 5크레인 앞 공연은 언제부터 진행했나요?
  진숙이 누나(민주노총 부산지부 김진숙 지도위원)가 한진중공업 85크레인 위에 올라간 1월부터 공연을 시작했어요. 사실 일터와 한진중공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요. 한진중공업 초대 노조 위원장을 지내다 의문사한 박창수 열사와 함께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워왔거든요. 제가 일터에서 처음 노래를 가르쳐주기 위해 방문했던 데가 한진중공업이기도 하고요.


  처음 진숙이 누나가 크레인 위에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놀랐어요. 85크레인은 2003년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당했던 김주익 열사가 목숨을 끊은 곳이에요. 그래서 그 장소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큰데 누나가 올라갔다고 하니까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죠. 그래서 문화제를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전국에 있는 노동문화단체에게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도와 달라”고 부탁했죠. 이에 우리나라, 꽃다지, 희망새, 연영석 등 여러 가수들이 흔쾌히 도와줬어요. 공연할 사람이 없으면 제가 했죠. 그런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네요. 이번 주는 극단공연 준비에 바빠서 하지 못했고 지난주까지도 공연을 했어요.


  사실 그 곳의 환경이 워낙 열악해 방송차를 이용하면 크레인 위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나 봐요. 그래서 저희와 함께 일 해온 음향업체에게 제대로 관리할 테니 싸움이 끝날 때 까지 기기 좀 빌려달라 부탁해 공연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 역시 일이 있어 매일 가기 힘들어 일주일에 네 번 정도 문화제를 함께하죠.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요?
  처음엔 한진중공업 앞 신도브래뉴 아파트 근처에서 공연을 진행했으나현재는 근처 초등학교 앞으로 쫓겨난 상태에요. 희망버스가 오기 전까지는 크레인 바로 밑에서 재밌게 놀았어요. 그러나 6월 17일 행정대집행 후에 신도브래뉴 앞에서 공연을 하려니 용역과 주민들, 그리고 경찰과 ‘시끄럽다, 뭐 하는 짓이냐’며 마찰이 생겼죠.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아쉽죠. 경찰의 행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요. 


  사실 복직대기자들의 어린 자녀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아파요. 네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한 아이는 뛰어가고 나머지는 따라잡으며 용역놀이를 해요. 다른 아이들이 동요를 부를 때 이 아이들은 단결투쟁가, 파업가를 부르고요. 그 노래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아이들이 부를 노래는 따로 있잖아요. 그 어린 애들이 임을위한 행진곡 가사를 전부 다 알아요. 파업가에 ‘해골이 두 쪽 나도 지킨다’는 가사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요. 용역들이 아빠를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들도 많아요.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미치는 거죠. 


  지난 6월 1차 시국선언 후에는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 분들과 함께 한진중공업 앞에 모여 있는데 주민 중 한분이“그러니까 너거가 다 잘리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어요.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니까 사람이 악마가 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미워질 정도였어요. 그 후 주민들과 부딪히지 말자는 의견이 있어 공연 장소를 옮겼어요. 회사 측에서는 분명히 저희와 주민들의 사이가 나빠지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영도 주민들은 공연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나요?
  모든 주민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에요. 어딜 가나 찬반은 나뉘잖아요. 영도 주민들도 마찬가지에요. 공연을 하고 있으면 “야 이 새끼들아, 신도브래뉴 사는데 잠 좀 자자”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럼 옆에서 “야, 나도 신도브래뉴 사는데 넌 아홉시도 되기 전에 자냐”고 맞받아치는 사람도 있죠. 사실 공연은 7시 반부터 시작해 9시가 되기 전에 끝나요. 그 시간에 “잠 좀 자자”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한진중공업 앞으로 가려면 신도브래뉴 아파트 계단을 지나야 해요. 하루는 ‘신도브래뉴 주민 일동’이라 적힌 현수막으로 계단이 막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주민들 의견이 모두 반영된 게 아니라 대표들이 임의대로 조치한 거라더군요. 주민들 사이에서도 ‘나는 동의한 적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는 얘기가 오갔나보더라고요. 알고 보니 경찰과 한진중공업 측이 주민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거였어요.

최근 집회가 문화 페스티벌로 풀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이렇게 바뀌어가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예전엔 집회 자체가 매우 딱딱하고 주장만 늘어놓는 형식이었어요. 한 시간 넘게 뙤약볕에 앉아서 연설을 듣고 있으면 정말 힘들죠. 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집중하기가 어려우니까. 솔직히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딱 하나라도 기억하게 만들면 그 집회는 성공한 거예요. 집회 자체가 이슈 거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니까요. 그래서 항상 얘기했어요. 제발 놀자, 그냥 놀자고. 피켓 하나를 들더라도, 노래 하나를 개사하더라도 사람들이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게 놀자고. 보세요. 집회 자체를 재밌게 풀어냈더니 ‘반값등록금 시행하라’는 대학생들의 주장을 전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잖아요.

 

앞으로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공연을 계속하실 건가요?
  제일 좋은 건 어서 빨리 사태가 해결돼 공연을 그만 하는 거예요. 사태가 해결되면 진숙이 누나도 크레인 위에서 내려올 테고 희망버스도 안와도 되고. 사실 다음 달 17일이 김주익 열사 돌아가신 날인데 보통 한진중공업 안에서 제를 지내거든요. 그런데 회사 안에 들어가질 못하니까 마음이 아프죠. 진숙이 누나가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제를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워요. 숭고한 마음은 잘 알겠는데 이기적일 지는 몰라도 어서 내려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커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려와서 싸웠으면 좋겠어요.


  만약 일찍 내려오지 못한다면 저 혼자 남을 때까지라도 노래를 불러야죠. 사실 사람들 앞에선 “누나 힘내요”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누나 어서 내려와요’라고 외치고 있어요. 누나가 어서 내려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노래할 거예요.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 대학생들은 취직이나 먹고 살기위해 너무 갇혀 사는 것 같아요. 사실 사회 문제는 20대가 아니면 참여하기 힘들어요.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할지 몰라요.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바로 젊은이라는 점이에요. 기성세대는 보지 못하는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20대는 볼 수 있어요. 젊은이들이 이 점을 지적해주면 그때서야 기성세대가 바꿀 수 있는거죠. 먹고살기 바쁘다고 앞만 보지 말고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연을 좀 많이 접했으면 좋겠어요. 굳이 저희 공연이 아니라도요. 지금 20대들이 처한 현실이 갑갑하잖아요. 그런 어려움을 연극이든 콘서트든 공연을 보며 여유를 가지고 주변 상황들을 조금씩 깨쳐 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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