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정비 사업으로 수몰 위기

   


  주민 모두 마음모아 가꿔온 용신제
  여름이면 시원한 물을 찾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드는 양산 원동의 배내골. 양산 물금신도시에서 두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간신히 타고 산길을 따라 가면 길게 뻗은 낙동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버스에서 내려 강 줄기를 거슬러 조금 올라가면 당곡마을과 만난다. 이곳에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이어온 ‘가야진용신제’를 지내는 ‘가야진사’가 있다.


  가야진용신제는 이 마을에 내려오는 제사로, 농사를 위해 물의 신인 용에게 ‘사독’이라는 제사를 지내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다. 또한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행해지던 국가적 제사의식이었다. 낙동강 이외에도 사독제는 한강과 금강에서 이뤄졌지만 현존하는 것은 이 곳 가야진용신제뿐이다. 지금은 매년 봄 원동면 주민 200여명이 모여 조선 태종 때 지어진 가야진사에서 제사를 지낸다.
 

  위패가 있는 사당에는 삼 년째 사당과 전수관의 관리를 도맡아 온 아주머니가 있다. 농사일과 집안일로 바쁘지만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사당과 전수관을 청소한다. 숱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시절에도 마을 주민들은 보리쌀을 조금씩 걷어 용신제를 치러냈다. 아직까지도 집 문을 열어 놓고 이웃에 놀러가는 시골 인심이 살아 있는 이 마을에 수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부터다.
 

“복원될 날만 기다렸는데 수몰이라니”
  천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가야진사는 지난 7월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에 강폭을 마을 쪽으로 150m 가량 넓히기로 결정하면서 수몰 예정지가 됐다. 지난 4월, 우리학교 도서관에 있는 <춘관통고>에서 가야진사 제단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한 뒤 제단 복원 공사에 착수한 지 다섯 달 만에 원동면 주민들은 ‘가야진사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제단 복원 공사는 용신제의 원래 모습을 회복하고 보존하기 위한 마을 주민 모두의 숙원 사업이지만 지금은 사당 앞 돌만 파헤쳐진 채 중단됐다.
 

  사당 옆 전수관 앞에서 가야진용신제 보존회 이희명(60) 회장은 조용히 낙동강 앞을 바라본다. 이 회장은 “이 전수관에서 젊은이들한테 용신제를 가르쳐주고 물려주고 싶었는데 이전 계획이 확정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해”라고 말하며 쓴 웃음을 짓는다. 전수관도 사당과 함께 물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용신제 때 북을 치는 진순연 아주머니(54)는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하는 수 없지”라고 말하면서도 “사당에는 조상의 얼이 서려있으니까 옮기더라도 최대한 비슷한 자리에 옮겨야 해”라고 강조한다.
 

  순연 아주머니가 “사당 옮기기 전까지 어떻게 제사 지냅니까? 못합니까?”라고 묻자 이희명 회장이 굳은 목소리로 “제당이 없어도 물 한 그릇이라도 떠 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어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야진사를 보존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신제를 알리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은 곧 낙동강 물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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