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백화점에 가면 종업원이 상냥하게 “손님, 찾는 물건이 계십니까?”라며 말을 건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커피숍에서 주문을 할라치면 “라떼는 없으시고요, 모카는 있으세요.”, 계산을 할라치면 “모두 합해서 2만원 나오셨습니다”라는 말도 듣는다. 종업원이 존대하려 의도했던 대상인 손님은 뒷전이고, 손님이 찾는 물건과 내는 돈이 어른이 되어버린 꼴이다. 말이 너무나도 매끄러워 무심코 들으면 그냥 넘어가기 쉬운 말들이지만, 실로 어이없고 너무 생각 없이 내뱉는 모습으로 보인다. 경어(敬語)는 대화의 주체나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쓰는 언어표현이란 걸 안다면 “손님, 찾으시는 물건이 있습니까?”가 맞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이런 괴상망측한 어법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타나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번져나가고 있는데 딱히 이렇다 할 저항도 비판도 없다는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마음의 소리’라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 사회의 모습을 거짓 없이 투영하는 가장 원초적인 문화이다.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있는 잘못된 존대법은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아 그 씁쓸함이 더하며, 우리의 품격 있는 말이 이렇듯 망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말엔 다른 나라 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정교하고 체계적인 존대법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예의가 그대로 스며있으며, 범절이 딱 맞게 배어있는 것이다.


  과잉존대 못지않게 듣기 거북하고 때론 우스꽝스런 말투도 있다. “교수님, 송편 맛있게 먹으세요”하는 철부지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기 아내를 가리켜 윗사람한테 ‘우리 부인’이라고 부르는, 몸만 어른인 개념 실종의 남편들도 허다하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는 위아래도 없이 막말이 오가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서울의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공용어로 쓰게 했더니 싸우거나 선생님께 대드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얼마 전 혼탁한 대한민국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안철수 씨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서로 존댓말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학교의 공적인 교육과 가정의 생활교육이 각각 이루어낸 소중한 성과이다. 이렇듯 말은 문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문화를 이끌어가고 품성을 가꾸어내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말과 문화는 맞물려 돌아간다. 말이 무너지면 그 나라 문화가 무너지고, 기본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연환경과 자원을 후세에 물려줄 의무도 주어지지만, 조상들이 내려준 소중한 우리말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올바른 우리말 쓰기’ 같은 어색한 관주도의 캠페인보다는 학교와 가정, 거리에서 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어른들이 솔선수범하고 자식과 제자, 젊은이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건강한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한글날에 즈음하여 가져보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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