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집에 있는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천리안과 적토마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고 우리의 눈과 발은 세계 곳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화, 세분화 되어가는 모든 학문을 섭렵하는게 가능할까?


  아쉽지만 컴퓨터가 아닌 이상 이 시대 인간의 지능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달 22일 우리학교에서 열린 ‘리더스 콘서트’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아주 명쾌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의 골든 키, 읽기와 쓰기라는 주제로 유익한 강의를 해주신 최재천 교수님께 먼저 감사의 인사말을 드린다.


  먼저 교수님께서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깊게 다루셨는데 이 단어는 에드워드 오스본 월슨의 ‘Consilience'라는 단어를 교수님께서 통섭(統攝)이라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지식의 경계를 넘어 발전하는 이 시대 학문의 표본을 보여주는 명확하고 간결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mending wall’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에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이란 문장이 나오는데 이 구절처럼 학문도 서로의 정체성은 잃어버리지 않은 채 교류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것을 나눠주고 남의 것을 받아 조화와 발전을 이뤄 가는 모습,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학문의 자세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옛날 우리 조상들이 상부상조하는 모습이 떠올라 나에게 그 뜻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문을 열어야하는데 그 문을 여는 열쇠구멍이 여러 개 있어 모든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아야만 열리는 것을 통섭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통섭을 위해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할 것이 바로 읽기와 쓰기라고 하셨다. 읽기를 통한 글쓰기 능력이야 말로 통섭을 위한 기본적인 자세라 할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강의를 들으며 내가 공부하는 학문에서 ‘예측’이란 단어가 ‘실현’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모든 학문의 가능성을 열고 마주해 예측의 지름길로 가다 보면 결국은 실현의 길이 도래할 것이다. 씨실과 날실의 조화로 하나의 옷이 탄생하는 것처럼 미래의 학문도 여러 학문들의 조합으로 전혀 다른 창조의 황금열쇠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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