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롤프 메르쿨레는 말한다. 시인 류시화는 ‘공부하다 죽어라’고 깨우친 자의 영감을 적은 책자 제목을 그렇게 적었다. 도대체 공부가 뭔데 죽을 때까지 필요한 게 공부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는 어떤 행동을 하는 그런 자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한다. 석자로 줄여 시쳇말로 ‘미친놈’이라 한다.
 

  만약 누군가 그대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대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대 역시 뚜렷한 목적도 이유도 없이 막연하게 ‘남들이 하니까’ 아니면 ‘부모가 시켜서’ 라고 답한다면 그대 역시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이 하는 공부,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그 공부의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머리가 영특한 천재라 할지라도 노력하는 자를 당할 수 없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라 할지라도 즐기는 자를 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공부를 어떻게 즐길 수 있다 말인가. 그건 목적이 뚜렷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돈과 사람은 붙어 다니고 사람은 배울 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모여든다. 피겨스케이팅을 즐기는 김연아는 세계 제일의 선수가 되지 않았는가. 그녀의 미소는 억만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즐기는 자만이 쏟아낼 수 있었던 향긋한 향기 아니었던가.
 

  그대가 돈을 벌기위해 노력한다면 결코 공부가 즐겁지도 않고 즐길 수도 없다. 그대가 학과 성적이 좋고 면접점수를 잘 받아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 하더라도 그대는 돈을 바라보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돈보고 절하는 사람 없듯이 그대 역시 눈은 칼같이 찢어지고 입술은 아래로 축 쳐진 사람이 될 것이다. 미소라고는 근처에도 찾지 못할 근엄하고 찬바람이 솔솔 부는 냉혈인간이 될 것이고 그 회사생활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긍긍 돈의 노예가 될 뿐이다. 그뿐인가? 아니다, 그대는 평생을 방황하게 되고 불나방처럼 자신도 모르게 불 속으로 뛰어 들게 될 것이다. 하룻밤도 편히 잠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즐기는 사람은 어떠한가? 공부를 어떻게 즐길 수 있다 말인가? 그대가 만약 인간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면 현란한 결혼식장엘 갈 것이 아니라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을 찾아라. 인생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인간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배울 것이다. 조만간에 자기에게도 닥칠 죽음을 인정한다면 짧은 시간 이 순간 살아있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감염되면 뇌조직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다’는, 누구도 싫어하는, 프리온을 연구한 위슬리히가 노벨상을 타듯이, 그대도 인류의 재앙을 막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또는 그러한 목적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그 어찌 공부가 즐겁지 않겠는가. 이유가 뚜렷하고 목적이 있는 공부 그것도 명예나 재물 생식욕이 대상이 아닌 오로지 인간의 불행을 대상으로 공부한다면 공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배울 것이 있는 그대를 찾아오게 되고 그러면 돈은 자연스럽게 굴러 들어오고, 어디 그 뿐이겠는가. 감동적인 사랑도, 신선한 음식도. 찬란한 명예도 배움을 얻어 깨우쳤던 인간으로부터 되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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