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더러 한국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첫 번째로 시간강사 제도를 말하겠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의 대학은 시간강사 때문에 영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간강사에 대한 인적?재정적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교육고도화를 기치로 지겹게도 경쟁력을 외치는 마당에서도 시간강사 문제는 논외로 치부되기 일쑤다. 오죽하면 21세기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야만’이겠는가.
 

  아마도 내 경험(나는 시간강사까지 합치면 올 해로 21년째 강단에 선다)으로 시간강사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그 문제만 나오면 굳이 침을 튀길 정도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고쳐져야 하는 문제임을 인정하는데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시간강사 문제는 좀처럼 큰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에는 비정규직법 등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는 말이다.

 
  혹자는 시간강사를 한 개인의 성장과정의 일시적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신입 연구자들이 거쳐야만 하는 통과 의례 쯤으로 시간강사를 보면서 그렇지 못한 경우는 능력 부족의 차원, 곧 도태(淘汰)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전임)교수시장의 과도하게 좁은 문에 비해 늘 과잉 공급될 수밖에 없는 연구자 수급의 문제가 되지만, 같은 현상이 있는 다른 나라에는 왜 이런 제도가 없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아마도 (적어도)1970년대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곧 전임이 될 것이므로 대우도 급료도 상관 않고 가르치는 경험만 얻을 거라고.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아니다. 전임이 될 가능성이 큰 연구자도 (여전히) 많지만, 시간강사가 직업 아닌 직업이 된 사람이 그 보다 훨씬 더 많다는 말이다. 

 
  병원의 레지던트도 비슷한 박봉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들은 전문의가 된다는 보장이 시간강사에 댈 바가 안 될 정도로 크다. 마치 군대처럼 조금만 참으면 지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레지던트의 절반 이상이 전문의가 되지 못한 채 일반의로 머물러야 한다면 아마도 상당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대학에서 수십 년째 벌어지고 있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침묵의 카르텔’ 속에 묶여 있다. 가만히 따져 보면 이 카르텔에는 대학인 모두가 들어있다. 시장 만능을 외치면서 있는 국립대마저 법인화시키지 못해 안달인 교육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가뜩이나 빈약한 대학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대학 당국, 자칫 나서다가 자신의 봉급을 나눠줘야 할지도 모르는 전임교수들, 연례행사 같은 등록금 인상에 전전긍긍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모두가 이 문제를 제기하기 싫어한다. ‘일부’의 시간강사들만 희생해주면 모두가 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된다. 대학교육의 질도 문제려니와 학문의 후속세대가 크지 못하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첫걸음은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것이다. 다음은 당사자들이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일책을 들면, 전업 강사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해 각종 보험이나 강사료의 단계적 현실화를 모색한다. 이를 위해 당국은 ‘교육 기금’이나 (전업 강사의)사회적 ‘인증제도’ 같은 장기적 플랜을 구상한다. 적어도 이 정도의 노력은 보여주어야 야만을 면하는 것이 아닐까?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