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지진복구①

   
조원들과 함께 집을 지어드린 양핑촌 앞에서

 작년 겨울 2기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해피무브 3기에 도전하였다. 양재동 본사에서 치러진 면접. 자신감 있고 열정적인 모습을 좋게 보셨는지, 최종 합격되었다. 강원도 횡성에서 조원들과 첫 만남. 각자 소개를 마치고 팀장을 뽑는 자리에서 자원을 했다.

청두행 비행기는 수많은 꿈을 싣고
  2009년 8월 5일, 인천 공항에서 다시 만난 봉사단은 상하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 정도 거리에 한중의 가까운 거리를 실감했다. 청두행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남짓의 비행에 지치기도 했지만, 친구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청두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내의 강한 향신료 향이 중국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쓰촨의 셀 수 없는 눈물
  현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오후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청두에서 차로 2시간 남짓 떨어진 곳이었는데, 1시간 즈음 지났을까. 길을 따라, 곳곳에 무너진 집과 다리가 버스로 달리는 1시간동안 이어졌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8만 명이 넘는다는 보고가 있었고, 피해복구에 천문학적 자금과 시간이 예측되었다. 지진의 충격으로 무너져 W자가 된 5.12다리를 가보니, 지진의 피해가 실감이 갔다. 주위의 산들은 산사태로 맨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해지역 마을을 지나 지진 복구와 집짓기 현장으로 향했다. 피해지역 마을에는 반쯤 무너진 건물내 상가에서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현장에는 얼마나 많은 이별을 했고,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흘렀을까.

지진현장의 세 가지의 집
  쓰촨에는 세 가지 집이 있었다. 무너진 집, 판넬로 지어진 임시숙소, 새로 짓는 집. 무너진 집들은 피해 복구가 힘들어 새로운 땅에 대규모 단지를 짓고 있었다. ‘땅이 넓으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펑저우에서 버스로 한 시간을 달리고 산골짜기를 걸어가 집짓기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맡은 일은 돌과 흙으로 집의 터를 다지고, 벽돌을 나르는 일이었다. 쓰촨 내륙 지방의 높은 습도와 푹푹 찌는 날씨에도 친구들은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터를 닦고, 벽돌을 날랐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자주 체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이었다.

모두가 함께 했던 문화공연의 시간
  작업 5일차, 오전 작업을 마치고 문화 공연을 하기위해 임시숙소로 향했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태권무와 소고춤, 난타 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어린 친구들은 순수한 눈으로 우리가 선보인 문화공연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서 학교에서 나눠주는 귀리빵을 집에 싸가, 동생들과 나눠먹은 얘기, 어머니께서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주는 과자를 먹기 위해 크리스마스에는 꼭 교회에 가셨던 얘기가 생각났다. 긴급구호를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이웃과 나눠주는 풍족한 나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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