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정치사회적인 힘이 분출되는 곳이다. 우리 학교 곳곳이 그러한 공간이었다. 부산대학교는 집단적인 승리의 기억과 숭고한 가치들이 내재된 역사적인 광장이었다. 특히 유신 독재에 맞서 외쳤던 시월의 함성이 가득했던 넉넉한 터, 구도서관, 사회대 잔디밭 등은 부산대인의 상징이었다.
 

  올해도 시월제가 다가왔다. 매년 10월이 되면 학내 곳곳에서 79년 부마항쟁의 시초가 되는 부산대의 영광과 기억을 되살리는 행사가 마련된다. 하지만 점점 형식화되는 연례행사에 구성원들의 관심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부산대학교라는 광장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들을 돌보지 못한 채 10월의 함성에서 괴리되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쟁과 취업문제 등, 우울하고 불편한 현실로 가득한 대학의 조건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산대라는 공간이 새롭게 만든 질서는 이렇게 학생, 교직원들의 일상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과 대학 사회 간의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공간과 사회는 상호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간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지만, 사회 역시 공간 위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성원들에 의해 대학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학내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대학이라는 공간은 새로운 성격과 이름들이 붙을 수 있고 새롭게 의미 부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양한 주체들의 요구와 변화가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떠한 특징을 가지냐는 것이지만….
 

  결국 시월제 부활의 열쇠는 대학인들이 광장의 정치라는 집단적 기억을 ‘어떻게 현실의 조건에 맞춰 재구성해야 하느냐’는 물음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까지 학내 곳곳에서 각종 집회와 문화제등을 계속해서 이어왔지만, 그것을 상징화하고 형식화하는 방법은 과거를 답습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나눔의 장을 시급히 복원하고, 기억을 광범위하게 공유?재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회실, 동아리방, 강의실, 넉넉한 터, 학교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등에서부터 일상화된 광장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간에 대한 행정적인 편의만을 기대하는 ‘수동적인 고객’의 자세는 지양하고, 선배들이 만들어 온 학교 내 공간 자치에 대한 ‘주체적인 권한과 지위’를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물론 부산대학이라는 공간이 구성원 모두에게 특별할 수 없다. 또 예전과 달리 넉터도 ‘좁터’가 되어버렸고, 세월의 흐름과 인위적인 가공으로 인해 학내 곳곳에 있던 모임과 만남의 장소들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바뀐 그 공간들에서라도 공동의 기억들을 조금씩 쌓아 가고, 그 기억들이 누적되는 광장의 일상화가 이루어진다면 함께 하는 이들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부마항쟁 30주년 기념 시월제는 일상화된 광장 정치의 복원시키고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하길 바란다. 예전처럼 소외된 의미와 기억들로 답습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과거의 가치와 경험을 현재의 기억으로 각인하고, 미래의 대안으로 재창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복원된 광장에서 함께 소통하고, 소리 죽였던 10월의 울림과 함성을 키워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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