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에 대학생들은자유롭지만 불안하다. 이 불안함이 무언가 미래지향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는 재미를 위해서 읽는 것이지, 결코 그 이상의 효율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간혹 소설이 시간을 좀 먹는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의외로 많다), 효율성을 운운하는 생활은 19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이 하층민을 지배하기 위해 주입시킨 생각이다.
 
  인간은 본래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된다고 경고하는 문구로 장을 여는 ‘캐비닛’은 소설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톡톡히 알려주다. ‘재미만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캐비닛에 대해 우아하고 낭만적인 상상을 떠올리는 짓은 집어치워야 한다. 그런 상상을 한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테니..
 
  작품의 화자는 13호 캐비닛을 지키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몇 년간의 취업 준비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어느 공기업 직원인 주인공은 이내 곧 좌절한다. 할일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느낀다. 너무 심심한 화자는 0000부터 9999까지의 숫자를 조합하여 사무실 캐비닛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한다. 그의 낡은 캐비닛의 파일 안에는 온갖 기이하고 특이한 존재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식수나 음료수 대용으로 휘발유를 마시는 심토퍼가 전 세계적으로 무려 천 사백 명이 넘거나, 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에서부터 6개월 이상의 매우 긴 잠을 자는 토포러까지. 도플갱어, 샴쌍둥이, 고양이 되는 마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 등 다양하고 무수한 판타지형 인물들이 출현한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 출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과거를 고치고 일기를 고쳤다는 사실을 잊은 채 수정된 과거가 자신의 기억을 지배하는 메모리 모자이커나, 지하철을 타고 도착역에서 내렸더니 정확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타임스키퍼는 내 친구들도 단순한 상상이 아닌 진짜일지도 모르고 자신도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게 만들었다.
 
  다행히 친절한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모든 정보는 창조, 오염된 것이므로 정말로 믿으면 안된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저자의 능청스런 구라’에 독자는 모두 우롱 당한다. 캐비닛의 돌연변이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또 현실적이다. 예컨대 토포러는 IMF시절 망해가는 회사를 건지기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불면증에 빠져들고 더 이상 희망이 없어 죽을 결심을 하다가 말 그대로 겨울잠 같은 긴 잠을 잔 후 토포러가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증상들은 개인별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또 얼마나 자기 자신을 학대하면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바쁜 일상 속에서 효율성 따위는 집어치우고 오로지 재미를 위해 이 책을 읽어보며 자신을 뒤돌아보길 바란다. 재미만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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