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학은 장소성의 고려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달리 말해, 장소에 대한 이해와 삶의 기반 없이 지역 문학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의 작품이 특정 장소를 거론한다고 해서 모두 다 장소성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장소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태도가 어떠한지,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독자들에게 어떠한 효과로 자리매김하는지, 장소성에 대한 그러한 구현이 그 지역, 그 장소와 어떠한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이해될 수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필 때, 장소성을 구현하는 지역 문학의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소애’는 단지 장소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인의 욕망을 낳게 한 기저만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지역 문학의 근본적인 발판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엄밀하게 이해해야 할 가치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장소애’는 단순히 특정 지역이나 공간, 장소(이-푸투안은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고 있다. 공간이 추상화 된 영역이라면 장소는 구체화 된 영역, 다시 말해 주체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곳을 말한다.)에 대한 토착민들의 애착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주체의 삶과 기억 속에서 보존되고 생성되며 재구성됨으로써 주체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론적 · 존재론적인 역동성을 포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 말은 곧 장소와 주체 간의 상상적 이자(二者) 관계, 다시 말해 ‘나르시시즘’적인 의미만으로 이 개념을 전용해서는 안 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지역 · 특정 장소에 대한 ‘나르시시즘’은 ‘타자’와의 교섭을 배제하거나 공격하는 논리 또는 태도를 취하게 하기 쉽다. 지역과 그 지역에 뿌리박고 있는 지역 문학을 역동적인 상상력의 토대로 우리가 이해하는 이유는 타자와 타자가 맞잡는 다원적 가치의 구성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거기에는 전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소애’가 자칫 ‘장소나르시시즘’의 세련된 판본으로 변질될 경우, 지역과 지역이, 선택과 배제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파시즘적 사고구조의 양상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 때문에 ‘장소애’에 대한 ‘윤리적’인 시적 구현은 ‘장소’에 대한 심리적 밀착을 과시함으로써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것에 일정한 미적 거리를 둠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지역의 장소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많은 지역시인들이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 특정 장소에 대한 친밀성과 애정을 수사적 언어로 기술한다고 해서 정말로 그 장소가 진정한 의미의 ‘장소성’을 구현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장소’에 대한 과도한 애정 표출은 그 장소가 지닌 다양한 삶의 맥락과 가치들은 사장시켜 버린 채, 특정 주체의 특정 장소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언어 낭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정란의 다음 시는 ‘나르시시즘’적인 장소 구현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로 거론될 수 있다.

퇴근길, 지하도 계단을 올라선다/ 맥도날드 불빛을 등지고 일 톤 트럭 한 대/ 가파른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다/ 그 불빛 아래 손짓으로만 말하는 두 사람/ 이마에 맺힌 근심을 닦으며 말을 굽는다/ 말과 말 사이, 사이 숨을 고르는 손으로/ 묽게 풀린 소리의 반죽을 틀에 붓고/ 그 위에 잘 발효된 침묵을 한 줌 얹는다/ 설익은 말들 숨을 죽이고 돌아눕는다/ 반죽 묻은 손으로 간을 맞추고/ 삐걱거리는 관절의 안부를 묻는 동안/ 젖은 말들 불의 온기를 들어마시고/ 완숙의 음절로 한껏 부풀어올라/ 두꺼워지는 어둠을 몇 걸음 뒤로 밀어낸다/ 종이봉지 안에서는 단골이라고/ 한 마디 더 얹어준 덤의 말/ 속에 든 말없음표까지 골고루 뜸이 든다/ 보드랍게 말랑거리는 말을 받아든 나는/ 목에 걸린 고등어 가시 같은 누추한 설움에/ 목 메인 일상을 천천히 목으로 넘긴다/ 무성한 차가운 말들이 파놓은/ 캄캄한 지하도 같은 숨은 함정들 용서한다/ 오늘도 두실역 일 번 출입구 농아 부부/ 소리 없이 따뜻한 느낌표를 굽는다
- 최정란, 두실역 일 번 출입구, 여우장갑, 문학의전당, 2007.

  위 시의 화자는 “두실역 일 번 출입구”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강박적인 ‘장소나르시시즘’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화자는 그곳에서 붕어빵을 굽는 “농아 부부”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퇴근길 지하철 역 앞의 평범한 일상을 어느 순간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되도록 화자를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즉 화자에게 그 경험은 “목 메인 일상”의 “숨은 함정들 용서”하게 하는 “느낌표”와 같은 깨달음의 계기로 주어졌던 것이다. 이 때, “두실역 일 번 출입구”라는 곳은 일상적 경험 속에 신산 되는 추상적 ‘공간’에서, 주체에게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 비일상적이고 일회적인 ‘장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제 화자에게 이 장소는, ‘장소나르시시즘’의 강박 없이 ‘장소애’를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물러 앉힘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장소를 호출하는 이러한 시적 전략은 장소에 대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양태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장소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새삼 질문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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