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쟁이 유氏(이하 염유)에서 염이란 염습, 습염이란 단어에 나오는 말이다. 염습(殮襲)이란 시신을 정결하게 씻겨(염) 수의를 입히는(습) 것으로 입관 전에 하는 절차이다. 즉, 염쟁이란, 전문적으로 염을 대신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전문적인 일에 붙는 ‘-장이’ 대신에 낮춰 부르는 ‘-쟁이’가 붙어서 천하게 부르는 단어가 된다. 누구나 꺼리는 일이기에 천하게 생각하지만, ‘죽음’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귀천, 귀하고 천함이 없다.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인연, 재산, 꿈.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누구나 죽는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라도, 가난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사람이라도 결국엔 죽는다. 그런 죽음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야 말로 염쟁이의 숙명이다.
 

  연극 대사 중에도 나오지만 무서운 것은 송장이 아니라 산 사람이다. 송장은 사람을 때리거나 피해를 주거나 사기 치지 않는다. 그러나 산 사람은 어떤가? 속이고 때리고 피해를 준다. 시체 썩는 냄새보다 산 사람의 썩은 냄새가 더 지독하다. 그래서 염쟁이 유씨는 송장 다루는 일이 더 쉽다고 말한다.
 

  ‘살아있다’라는 말의 동의이음어는 ‘죽어간다’라는 말이 아닐까. 살아있음에 죽을 수 있고 죽을 수 있기에 살아간다. 끝과 마무리, 모두가 좋아야 전체가 좋아진다. 용두사미처럼 시작만 멋들어지면 뭐하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의 끝을 좋게 마무리하는 염쟁이 유씨가 돋보이는 것 같다.
 

  죽음은 무시할 필요도, 극찬할 필요도 없다. 우리 인생에 하나의 마무리일 뿐이다. 글을 쓸 때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인생의 마침표이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처음 본 외국인들은 장례식 광경에 매우 놀란다고 한다. 상갓집에 가보면 슬퍼하는 가족들과 인사 온 조문객들이 모여 한쪽에선 술판이, 한쪽에선 화투판이 벌어진다. 하나의 축제다. 이처럼 죽음은 마냥 슬퍼할 대상이 아니다. 삶의 한 부분이기에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염유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더 커진다.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다시 웃기고,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염유는 1인극이다. 일반 연극보다 마당극에 가깝다. 관객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게 닮았다. 관객들에게 술 한 잔 내밀고 술 한 잔 얻어먹는다. 나도 얻어먹었다. 근데 진짜 술이다!
  “아무리 세상이 빨리 변한다 해도 천천히 해야 할 건, 정성을 들여야 할 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 사람들이 다들 빠른 것을 추구하다 보니 나 또한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처럼 말을 타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 의문이 생긴다.
 

  염유는 재밌다. 그렇지만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이런 분위기나 내용이 더 마음에 든다. 삶에 더 가깝다는 생각 때문일까? 2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연극 중 유 선생님께 얻어먹은 술 한 잔 때문일까? 쉬이 감정적이 된다.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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