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도 하기 전부터 취업 걱정부터 한다고 하였더니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화답하기를, 요즘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취업 걱정부터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촌스럽게(?) 미래의 꿈을 ‘대통령’같은 막연한 생각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취업을 하기 전에는 학교 성적에 목을 매달고, 성적을 바탕으로 다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온 청춘을 바치고,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 보다 나은 취직을 위해 불철주야 애쓴다. 그러면 취업으로 인생의 목표는 달성되는 것일까?

  취업을 하고 나면 다시 결혼을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취업하고 결혼하면 다시 좀 더 풍요롭고 안정된 사회적 삶을 위해 승진을 꿈꾼다. 승진의 끝은 중도 탈락, 혹은 명예퇴직이 되기 십상이고, 아주 적은 사람만이 정상 퇴직을 한다. 중도 탈락을 하건, 정상 퇴직을 하건, 자기 직장에서 삶의 보람을 제대로 찾는 사람의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될까? 그냥 월급 좀 더 받고, 좀 더 많은 권한을 가진 높은 지위를 누리는 그 자체가 보람일까?

  직장에서 진정한 보람을 찾지 못한 사람, 특히 그러한 한국 사람은 자기 자식을 통해 만회하려 한다. 그 자식은 다시 그의 자식을 통해 재도전한다. 당대는 늘 희망에 속아 살고, 끝내는 다음 세대로 유보하는 것으로 허탈감을 은폐한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그 이름 너무나 익숙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더 많이 알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 더 훌륭함을 말하고 있다. 좋아하면 자연히 잘 알게 된다. 좋아하는 것에서 나아가 즐기는 경지로까지 가면 애쓰지 않고 그 본질까지 터득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은 대상화시키는 것이며, 즐기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다. 즉, 좋아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이며, 즐기는 것은 평등한 사고이면서 소통하고 어울리는 행위이다.
 

  취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어떤 조직에 편입되어 그 조직이 좋아하는 대로 행위를 하고, 그 대가로 경제적이거나, 혹은 여타의 이익을 받아내는 삶의 방식을 말함인가? 그러한 취업은 내가 상대를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대상화시키는 데 부응함으로써 얻어내는 알량한 대가에 불과하다. 자기중심적 편협한 삶조차도 되지 않는, 타인의 삶에 대상화되어 줌으로써 얻어내는 가냘픈 반대급부일 뿐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 나아가서 나와 상대가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평등한 즐김의 삶을 취업 전선에 도입할 방도는 없는 것일까? 말단 사원이라도 그 일을 즐기면서 하는 자는 돈을 위해 할 수 없이 사업을 하고 있는 사장보다도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학 전부터 취업에 골몰하는 학생은 어느 쪽으로 되기가 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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