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등록금 투쟁의 역사

  학내외에 등록금 인상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록금 투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등록금이 동결돼 등록금 투쟁을 볼 수 없는 지금, 우리학교 등록금 투쟁의 역사와 의미를 되돌아본다.

 
 
  매해 겨울에서 다음 해 봄까지 우리학교는 ‘등록금 투쟁’으로 떠들썩하다.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명 ‘등투’는 주로 인상률을 낮추기 위해 학생들이 벌이는 일종의 운동이다. 2007년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 함형재(미생물 4) 위원장은 “등록금 투쟁은 학생들과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본부와의 협상력을 높이는 하나의 과정이라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등록금 투쟁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장 투쟁의 열기가 뜨거웠던 때는 2000년이다. 31대 총학생회는 1999년 1월, 부산대발전협의회에서 회의가 결렬되자 101일 동안 총장실을 점거하고 단과대 행정실 집기를 들어내 학사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학생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납부 연기 투쟁에는 12%의 재학생이 참여했다. 단식을 결의하고 삭발식을 거행할 만큼 열띤 투쟁으로 5월이 되어서야 등록금 합의서가 채택되었으며 장학금과 복지예산이 추가로 확보되었다. 당시 학원자진화추진위원회 김병준(기계공 96, 졸) 위원장은 “국립대 등록금은 교육의 공공성과 관련되는 문제여서 투쟁이 불가피했으며 투쟁을 하면 꼭 얻는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3월에는 경리과에 닭, 돼지, 개가 출현했다. 등록금 인상에 항거해 등록금을 현물로 납부한 것. 당시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 신수(미생물 01, 졸) 부위원장은 “옛날에는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했지만 등록금이 소 한 마리 값이 넘게 된 지금, 소도 없고 돈도 없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4월에는 18년 만에 학생총회를 성사시켜 등록금 인상분을 재조정하거나 학생요구안을 전달하는 활동 등을 했다.

 
  2006년에는 ‘등록금 직접 납부’ 방식이 도입되었다. 등록금 인상의 부당함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총학생회 측으로 직접 등록금을 납부하게 했다. 그 해 2월에는 경리과가 때 아닌 ‘방역’을 당했다. 총학생회가 경리과를 돈벌레로 생각해 진짜 소독기를 들고 경리과에 소독약을 뿌린 것이다. 당시 경리과 직원이었던 캠퍼스재정기획과 박경화씨는 “사전의 양해도 없이 진행된 투쟁이라 피해가 컸다”며 “의사표현은 존중하나 일방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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