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책 한권│ - 다잉 인사이드 (로버트 실버버그)

  그는 로버트 실버버그의 “다잉 인사이드”를 쥐새끼가 문지방을 갉아먹는 것처럼 야금야금 갉아먹듯이 읽었다. 여기서는 '야금야금'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맛있는 것은 한꺼번에 먹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아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셀리그의 감정에 한껏 빠져들어, 마치 셀리그가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자서전을 편집하듯, 그는 셀리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셀리그와 일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셀리그의 고통을 그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셀리그의 절망을 자신의 절망으로 치환시켜 기억이 분출시키는 고통 속에서 쾌락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셀리그는 타인의 머릿속에 침입하여 자신을 들여다보듯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과 절망을 본다. 셀리그는 자신을 영원히 소외된 타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외로움, 두려움, 불안함이 그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다. 그는 타인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셀리그는 불명료한 언어적 소통의 한계를 넘어 "의미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죄의식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관음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셀리그의 죄의식에는 어떤 도덕적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을 하나의 자아로 정립할 수 있다. 도덕의 대상은 기실 ‘나’가 아니라 타인들이다. 우리는 우선 타인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본다. 우리는 타자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나라는 존재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셀리그는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닫힌 모나드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불행한 존재. 세상에 대한 냉소는 세상의 본질을 다 알아버렸을 때 발생하는 자의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만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필멸의 존재라는 생의 본질을 간파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셀리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고통과 분노와 절망과 외로움과 좌절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타인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 아니 그 사람의 영혼의 심연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 특별한 재능을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탁월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는 인간의 죄의식과 고통의 근원이 도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에 내재하고 있는 역설이 아닌가! 셀리그는 다른 사람의 영혼 깊숙한 곳에는 언어의 장벽을 소멸시키는 영혼의 언어, 즉 “언어 없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진리를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자신의 특별한 재능으로 인해 삶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는 셀리그는 재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 그는 끊임없이 되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 힘이 바로 내가 아닌가? 내가 바로 그 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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