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민(의학전문대학원 3)

  다음날, 새벽 기상을 알리는 요란한 현지음악이 울렸다.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났다. 북위 10도의 열대지역에서 1대의 선풍기로 밤을 보내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잠을 설쳤고, 때문에 아침이 너무 힘들었다. 간단히 체조를 하고, 학교 주변 청소를 한 다음, 세면장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는 둥 마는 둥. 아침 식사도 억지로 밀어 넣는 수준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의료봉사팀원들과 진료가 예정된 강당으로 이동해 준비를 했다. 우선 역할을 나누었다. 진료는 김윤진 교수님과 가정의학과 전공의 선생님이 나눠서 보았고, 어느 정도 영어가 가능한 학생이 앞에서 예진(진료 보기 전 병력청취)을 보았다. 혈압을 체크하는 학생이 한명 있고, 안내 담당자가 있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약제 팀에 속했다.


  나는 약제 팀에 속하여 처방전을 보고 약을 조제해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역할을 맡았다. 그 다음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하고 약 포장기로 포장하여 환자에게 복용방법을 설명하였다. ‘돈보스코’ 학교 선생님들 및 직원들 중 영어 가능자가 통역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학생들과 의사 선생님들이 영어로 얘기하면 그 분들이 캄보디아어로 현지 환자들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의료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의료비 역시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한국에서 의료봉사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쏟아지는 환자들,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들, 더운 날씨에 몰려드는 짜증만큼이나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치료라는 것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백내장 환자, 암이 의심되는 사람, 당뇨 환자… 이런 사람에게 증상을 잠시 완화시킬 수 있는 일시적인 대증치료 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어찌되었든 5일 동안 8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였고, 떠나기 전날 학생들이 모여서 800여명의 환자들이 대체로 어떠한 질병이 많았는지 통계를 내는 작업(복통, 고혈압, 부인과 등)을 했다. 그리고 이 자료를 토대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백내장 예방위해 선글라스 사용과 물 끓여 마시기, 근골격 질환 예방 위해 간단한 운동 실시 등) 학교 신부님께 전달하였다.


  그리고 작별이었다. 그 곳 학교 직원 및 학생들이 모두 나와서 환송해주며 스타킹으로 만든 꽃(이 꽃은 에이즈 여성들이 만들어 더욱 의미 있다고 한다)을 선물로 전달했다. 우리가 한 것에 비해 너무 큰 선물을 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 쑥스럽고, 한편으로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작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살아간다’ 소설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같지 않지만 2010년 캄보디아에서 보낸 일주일간의 기억은 훗날 내가 의사가 되었을 때, 의사로서의 연료가 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로서의 길을 걷는 단계인 학생시절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 나는 행운아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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