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근무시절에 모셨던 행정실장님 두 분이 7월에 공로연수에 들어가셨다. 일부러 찾아가 인사드리니 담담하게 자리를 정리하시면서 하시는 한 말씀 한 말씀에 30년 넘은 공직 생활, 그리고 부산대에 근무하시면서 지내온 세월들에 대해 진한 회한이 베어 나온다.


  “시원섭섭하다”는 말. 늘 쓰는 표현이지만 지난 세월을 보퉁이로 몽땅 싸서 그 안에 든 것을 다른 사람 앞에 그렇게 쿨하게 나타낼만한 말도 없는 것 같다. 그 분들에게 직장은 그 자체로 삶이었다.


  이제 사십을 어설프게 넘었을 뿐인데 귀 뒤로 흰머리가 자꾸 모인다. 나는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처음 만든 공무원증 사진과 지금 그것을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 아니다. 좋게 “무게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솔직히 “늙었다”


  대학 근무 11년, 얼마 되지 않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에서 조차 아쉬움이 남는다. 잘한 일은 없는 것 같고 노를 저으면서도 항상 휩쓸려 살아온 것 같은 아쉬움. 내가 떠날 때는 ‘저 사람 참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아쉽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데 ‘가족들과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기’만큼이나 어렵다. 불혹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삶의 보람은 어느 것을 포기하고 어느 것을 선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항상 바쁘게 이것저것 고민하고 시간을 밀도 있게 쓰는 속에서 ‘피곤했지만 보람 있는 하루였어’ 뭐 이렇게 되는 거 아닐까. 그것이 누적되면서 ‘인생,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어’라고 생각한다면 더없이 좋겠고.


  오늘도 적당히 게으르고 싶은데, 먼 세월 뒤에 되돌아보면 지금의 나태와 무기력은 또다시 나를 초라하게 할 것 같다. 삶의 보람을 찾는 길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이익에 머리 굴리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세월을 채워 나간다면 삶의 보람도 커지지 않을까.


  내가 퇴직할 때는, 겪은 세월의 부스러기까지 몽땅 보따리 하나에 둘둘 말아서 그냥 쿨하게 “시원 섭섭하네요”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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