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서있다. 버스가 오자 요금 통에 피우던 담배를 넣고 탄다. 통이 활활 타오르고 남자는 승객들을 때려눕히며 외친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버스기사는 “오케이”를 외치지만 결국에는 폭발과 함께 모두 죽는다.


  마치 영화 ‘실미도’를 연상시키지만 뭔가 조금 이상한 맛이 나는 이야기. 웹툰 ‘이말년 시리즈’를 연재중인 이말년(본명 이병건) 작가의 대표작 <불타는 버스>의 내용이다. 이외에도 <마음의 소리>, <정열맨> 같은 일명 ‘병맛’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작품에는 ‘기-승-전-결’로 이뤄진 탄탄한 스토리나 멋지고 예쁜 주인공 따위는 없다. 다만 인터넷을 휩쓰는 유행어들과 어디서 본 듯하지만 연관성은 없는 패러디, 그리고 독자의 예상을 어김없이 배신하는 ‘기-승-전-병’의 이야기가 있을 뿐. 이런 ‘병맛’에 대해 이말년 작가는 “병맛은 그냥 병맛일 뿐 정의를 내리긴 힘들어요”라며 “굳이 정의한다면 어처구니없어 나오는 황당한 웃음정도죠”라고 말한다.


  특히 20대들은 병맛만화의 업데이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열광한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신미은(경영 4) 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만화 속에서 웃고 떠들며 잊을 수 있어요”라며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가볍게 볼 수 있죠”라고 말했다. 비현실적이고 우스운 네모 컷들은 젊은 세대의 근심을 덜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병신 같은 맛’은 20대의 웃음코드로 자리 잡았다. 진석훈(무역 4) 씨는 “만화에 나오는 소재들은 항상 최신 유행을 달리며 젊은이들이 관심 갖는 사건이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죠”라며 좋아했다. 또한 임현우(생물 4) 씨도 “순간적이고 자극적이라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려요”라고 말해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젊은 웃음’을 알 수 있다.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희화화한 점도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다. 이일래(사회) 강사는 “웃음 자체가 자신이 처한 삶의 상황에서 나와요. 20대가 처한 상황이 30~40대와 다르니 웃음코드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라며 “88만원 세대라 불리고 취업에 대한 압박으로 희망이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는 그런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현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죠”라고 분석했다.


  이 작가는 “요즘 세상은 전문적이고 섬세한 작업물들이 쏟아지는 ‘웰메이드 문화’가 넘쳐나는데 거기에 질린 소비자들이 어설프고 조악한 ‘병맛만화’에 잠시 쉬다 간다고 볼 수도 있죠”라고 설명했다. 또 이 강사는 “우리 모두의 삶은 사실 조금씩 ‘찌질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찌질함’이 만화 속에 가감 없이 표현되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고 해방구가 되어주는 것도 인기를 끄는 이유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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