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관광지에 가면 어디서나 ‘○○ 다녀감’이란 글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방명록에 쓰기도 하고 벽에 새기기도 하는 글귀는 유명관광지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학교 앞 상점들 역시 오랜 세월동안 다녀간 손님들의 흔적으로 사방 벽이 빼곡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슬비(수학 3) 씨는 “기억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남기고 싶어 글로 쓴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기표현에의 욕구’가 낙서 등으로 표출된다고 분석했다. 홍창희(심리) 교수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어요”라며 “이를 통해 개인적인 행복감을 얻을 수도 있구요”라고 설명했다. 장소에 따라 이런 흔적들은 단순한 낙서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낳기도 한다. 김문겸(사회) 교수는 “낙서나 흔적들은 공해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이 어디냐에 따라 장소의 가치를 오히려 상승시키는 하나의 미학적인 힘을 가질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흔적을 남기는 행동은 사회적 의미로 살펴봤을 때 ‘대화와 소통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정수연(해양시스템공 2) 씨는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 힘든 사소한 것들을 써넣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이에 김문겸 교수는 “이런 인간의 표현본능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에요”라며 “즉 사회와 혹은 대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하나의 방식인거죠”라고 분석했다.


  한편, 광범위한 관계 속에 상호간의 유대가 희미해진 현대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문성원(철학) 교수는 “예를 들어 단순한 낙서가 아닌 어떤 산의 정상을 정복하고 그곳에 증거를 남기는 것은 본능이 아닌 목적이 있는 유의미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죠”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가 남긴 흔적들은 단순한 낙서에서 벗어나 하나의 추억이 된다. 막걸리집 ‘천탁’의 사장 배준우(구서동, 45) 씨는 “벽을 다시 도배하고 깨끗하게 바꾸고 싶어도 손님들의 소중한 추억이 스며있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라며 “그냥 남기는 낙서지만 그 속엔 희로애락이나 미학이 있고 가게의 변천사까지 담겨있거든요”라고 밝혔다. 또한 홍창희 교수는 “흔적을 남기고자하는 욕구가 원시적 수준에서는 낙서나 단순한 글을 남기는 것에 머물지만 이를 승화시켜 표현하면 예술작품이 돼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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