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거듭되는 실패 없이 성공은 가능한가. 학문 영역에서 세워지는 가설이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기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왕의 지식이 온전하다면 새로운 가설을 세울 필요가 없다. 여전히 불완전한 까닭에 새로운 가설을 만들고, 그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이 학문의 과정이라면 학문은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문은 관찰과 실험을 통하고 경험적 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가설의 진위를 검증한다. 관찰과 실험은 도구가 가지는 한계를 크게 벗어나기 어렵고, 수집되는 자료는 사람의 오감이 미치는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학문 활동을 통해 진위가 가려지는 명제는 늘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만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예측한 결과가 사실임을 밝히는 데 성공한 연구가 다음 순간 불완전하거나 실패한 연구였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은 사라진다.


  학문은 예견하거나 예측한 결과를 확인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먼 안목으로 바라볼 때 학문은 예견이나 예측이 옳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견하거나 예측한 결과가 사실이라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지금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강변한다면, 학문은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고, 대학은 존립할 이유를 가지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대학에서의 교육은 내가 학습하거나 발견한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알리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 지식이 지식이 되는 조건이나 전제까지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학문이 부단한 실패의 연속이었음을 알게 하는 연구와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지식을 불변의 진리인 양 호도하는 교육이 만연할 때, 대학은 기계적인 인간, 석고형의 인간을 양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유형의 인간을 찍어내는 교육이 성공적이라면 대학에서 실패하는 인간이 진전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질 것이다.


  계량적이고 근시안적인 평가는 지식이 지식이 되는 조건이나 전제를 더욱 더 숨기도록 유인한다. 그런 평가가 난무할수록 사고의 폭과 깊이는 줄어들고, 실제로는 한층 더 많은 조건이나 전제가 필요한 연구 결과가 양산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마저 속이는 연구자가 되고 교육자가 될 수도 있다. 흔히 토론에서는 전제를 문제 삼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대학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전제부터 따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학문 활동을 포함하여 사람이 하는 일은 늘 불완전하게 마련이다. 분절적인 언어와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세계 - 그것이 아무리 부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 를 완전하게 인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학문은 총체적인 진리를 외경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선대가 발견한 진리의 진정성을 부단하게 캐묻는 과정이어야 한다. 계량적이고 근시안적인 잣대로 실패냐 성공이냐를 판가름하기보다는 실패와 성공을 결정하는 전제나 조건을 명확하게 밝혀내고 확인하는 방법과 능력을 교수와 학생이 함께 길러가야 한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우리의 대학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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