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페인의 ‘바튼 아카데미’(2023)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을 비틀어놓은 재해석이다. 상류계급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사제(師弟) 지간의 드라마라는 플롯의 근간은 같다. 다만 진취적이고 의욕 넘치며 보수적인 학풍에 저항하던 키팅 선생과 달리 ‘왕눈깔’ 폴 허넘(폴 지아매티)은 철지난 라틴어 격언을 입에 달고 살며 학교의 전통과 규율을 지킴에 있어선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보수주의자이고, 방학 동안 기숙사에 홀로 남게 되어 그가 보살펴야 할 학생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는 수업에 불성실하고 반항적
부산대 북문에서 큰 길을 따라 내려가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카페 헤세이티로 발길이 멈추곤 했다. 입간판을 내걸고 있던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이 곳은 들르는 날이면 나른한 햇살을 쬐며 하품하는 고양이 헤세와 놀아주고, 책장에 수두룩하게 꽂혀있던 인문학 장서들을 꺼내 읽거나 지인과 담소하는 걸로 소일하던 장소였다. 인문학 공동체 활동의 거점으로 출발했다가 운영난에 부딪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살려내고자 지킴이 노릇을 자처한 분들의 뜻과 노력으로 수년을 더 버텼다. 그리고 사라졌다.‘나의 올드 오
영화 (2023)의 도입부는 간결하고 소박하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여고생들을 내려다보던 카메라는 교실로 들어와서는 창가 자리에 홀로 있는 세미(박혜수)를 비춘다. 이때 세미의 뒷모습은 배경에 장치된 거울 속에 비치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될 모티브가 엄격한 논리와 설계 하에 배치되어 있다. 창문 밖의 풍경에서 교실 안으로 넘어오면서 영화는 사각의 틀, 즉 어떤 폐쇄적인 상황에 가두어진 이들의 고립과 소외를 다룸과 동시에 창문을 경계로 그어진 이편과 저편, 나누어진 두 세계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
올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23)이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한 편, 소라 네오의 다큐멘터리 (2023)(이 제목은 ‘Back To The Basic’ 앨범에 수록된 4번 트랙 ‘Opus’에서 따온 것이다)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전자가 음악감독으로서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 1952~2023)가 참여한 작품이라면, 후자는 생애 마지막 연주를 담은 흑백의 콘서트 필름이다. 2018년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의 무대에서 (1983)의 테마곡을 피아노 독주하던 모습을, 병색이 완연했음에
(2023)가 흥행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이념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영화와 현실, 1950년대 미국과 2020년대 한국이라는 시공간의 벽을 넘어서 반공주의 논쟁이라는 닮은꼴이 중첩되고 있는 걸 보고 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지난 2022년, 마침내 모든 혐의를 벗고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진보적 인사들을 스파이 혐의가 있는 국가반역자로 몰아간 매카시즘의 광풍은 애국자로 찬양받던 과학자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놓았지만, 적어도 미국 사회에서는 지난 역사의 불행과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과 청산이 있었던
오정석의 ‘여름날’(2019)과 전지희의 ‘국도극장’(2018)은 연출에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지만, 서울에서 살다 돌아온 지방청년을 주인공으로 삼는 ‘귀향’의 서사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먼저 ‘여름날’의 전략은 침묵과 관조이다. 주인공 승희의 얼굴마저도 제대로 비추지 않는 영화의 카메라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가면서 인물을 둘러싼 주변의 풍경을 프레임에 담는다. 경제를 지탱해 오던 기반 산업은 붕괴해가고, 젊은 층 인구는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활력을 잃은 지역의 현실. 인물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핑계이자 구실일 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