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은 한 해가 끝나고 지난 일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으레 등장하는 말이다. 자주 나와 식상한 감도 주지만 그래도 그만한 말이 없는 듯하다. 희망찬 새 학기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무리일줄 알지만 이번 방학을 보낸 기분이 꼭 그렇다. 방학이 시작될 때는 경제에 대한 온갖 부정적 전망이 판을 쳐 기분을 우울하게 하더니, 느닷없는 ‘입법 전쟁’이 우리를 괴롭혔고, 갑자기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청산하지 않았나 싶은 용산 참사 까지 벌어져 정신없게 우리를 몰아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록금이 동결되어 학비 부담이 가중되지 않은 정도다.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1930년대 ‘대공황’에 견주어지는 지금의 위기가 쉽사리 끝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위기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극단적인 비관마저 나온다. IMF라는 ‘예방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고는 하나 맞은 자리가 오히려 더 아픈 것처럼 암울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괴로움은 신학기의 설레임을 훨씬 넘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처한 것은 위기가 아니고, 우리 경험으로도 십분 느낀 바대로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해서 마냥 넋 놓고 당면의 일을 미룰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그 당면의 일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 그것은 반성과 준비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이미 경주되고 있고 그 어떤 일도 사이클은 있는 법이어서 어떻게든 위기는 지나가게 된다.


  문제는 다음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지나느냐에 따라 다음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졸업을 미루고 각자의 ‘스펙’을 위해 경주하는 이유는 이 다음을 자신에 맞게 개척하기 위함이다. 만약 지금을 효과적으로 보내지 못한다면 다음이 오히려 위기가 된다.

 
이러한 준비의 전제는 반성이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개인이든 국가든 미래에 대한 비전만으로는 준비의 ‘상담’(嘗膽)을 견디기 어렵다. 위기를 부른 지난 잘못에 대한 냉정한 자기 통찰과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제 겨우 대학생인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싶지만 의외로 주변을 돌아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수업시간에 지각은 예사고, 노트 하나 없이 전공 책은 사물함 속에서 잠자며, 요령 없이 보내는 시간은 방학 때나 별 차이가 없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식당이 있음에도 점심시간만 되면 온갖 음식물 그릇들이 여기저기에 넘쳐나고, 학회실은 마치 쓰레기통 같이 너저분하며, 각종 게시판들은 광고지로 도배되거나 붙인 흔적의 청색 테이프 조각만 상흔처럼 남아 있다. 소음이나 안전, 불필요한 현수막 등 안면을 방해하는 것 역시 여전하다. 이런 잘못들을 그냥 놔두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위기가 기회일 수 있는 것은 이런 우리 안의 허물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쌓여 큰 사회적 흐름으로 될 때 만이다. 섣부르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하게 될 즐거운 결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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