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나는 돈오의 꽃을 본다. 도종환의 시 ‘돈오의 꽃’을 통해서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비오고 바람 분다// 연꽃 들고 미소짓지 말아라/ 연꽃 든 손 너머/  허공을 보지 못하면/ 아직 무명이다// 버리고 죽어서 허공이 된 뒤에 큰 허공과 만나야/ 비로소 우주이다// 백 번 천 번 다시 죽어라/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매일 별똥이 지고 어둠 몰려 올 것이다’


  내가 건축설계회사 L회장을 처음 만난 것이 1994년 4월경,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였다. 나는 그 당시 박사과정 2년차를 마무리할 때 즈음이었다. L회장은 얼굴이 초췌하였다. 간이 나쁘다고 이야기를 들은 터라 가능하면 병을 화제로 삼는 일은 삼갔다. 눈이 매서웠다. 사람을 쳐다 볼 때마다 마음속을 훤히 읽는 것처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했다. L회장은 연신 대화를 나누면서 수첩에다 무엇을 메모하고 있었다. 아마 대화 내용인 것 같았다. 주로 건축, 철학,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존주의적 현상학의 대가인 하이데거, 그 당시에 유행하던 해체주의의 데리다, 건축가인 아이젠만, 리브스킨트, 츄미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온 K교수가 대화를 주도하려했다. 이럴 때마다 내 이웃에 사는 나의 건축학과 친구 J는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여 K교수의 이야기의 맥을 끊어버리곤 했다. L회장의 시선은 허공에 있는 돈오의 꽃을 보는 것 같았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비오고 바람 분다’


  L회장을 그 후 미국에서 J, K교수와 함께 여러 차례 만났다. 그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의 태도는 공부하는 학생 이상이었다. 그런 그를 보면 상좌 스님이 은사 스님을 정성으로 모시는 것 같은 지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며 매일 아침에 화장실에 볼일 보러가 2페이지 이상 탐독하는 것을 무려 20여 년간 해왔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란다. L회장은 또다시 돈오의 꽃을 본다. ‘연꽃 들고 미소 짓지 말아라/ 연꽃 든 손 너머/ 허공을 보지 못하면 아직 무명이다’


  학구열에 불타는 그는 마침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것은 그의 집념과 오기가 이루어 놓은 성과다. 그는 나를 지도교수로 택했다. 그러다가 2004년 2학기 때는 그를 한동안 보지 못했다. 그 후 6~7개월 지난 후에 만나니 간 이식 수술을 했단다. 그로서는 정말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60대를 훌쩍 넘어선 그는 젊은이도 종종 통과 못한다는 학위청구자격  외국어취득시험을 패스하고 2011년, 마침내 건축공학 박사학위 취득했다. 그는 여전히 ‘돈오의 꽃’을 응시하고 있었다. ‘버리고 죽어서 허공이 된 뒤에 큰 허공과 만나야 비로소 우주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한 사람의 학문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학문은 좌절, 패배, 끈기, 집념, 오기 등이 바탕을 이룰 때 가능한 것이다. 그는 젊은 학도들이 주는 모멸감, 열패감, 좌절감 등을 공부의 깨달음으로 승화시킨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큰소리로 외친다. 백 번 천 번 다시 죽어라/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매일 별똥이 지고 어둠 몰려올 것이다‘ 그의 깨달음과 성취에 갈채를 보낸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