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란 말이 있다. 사람에게 닥치는 세 가지 재앙이란 뜻인데 흔히 어느 해에 어느 띠가 좋지 않다고 할 때, 삼재가 끼었다(또는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말은 사실 그렇게 큰 근거가 있지는 않다. 어느 띠에 해당하는 사람이 수십, 수백만에 달하고 이들 모두가 어떤 해에 유독 불행을 당한다는 주장은 ‘이치가 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런 (일종의)유형화 중에서는 부분적이지만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도 있는데, 혈액형 같은 것이 그러하다. 이 역시 수백만을 같은 범주 속에 넣고 기질이나 성향, 심지어는 애정 유형까지 나누는 무리를 범하지만, 다른 피끼리는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나름의 근거는 갖추고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사상(또는 팔상)도 이런 유형화인데, 그 근거는 앞서의 삼재와 혈액형 사이 정도인 듯하다.
 

  이런 유형화에 넣자면, 우리나라는 올해가 삼재다. 존경 받던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죽고(그것도 한 분은 적극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자살이고), 나라 역시 끝 모를 위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태도라면 그 원인까지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삼재라는 말이 그렇듯 그런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그 러나 지금의 위기가 내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므로 억울한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점이 재(災)라는 말에 딱 어울린다. 여기에 연달아 국(민)장을 당했으니 삼재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반영하는지, 최근에는 부모끼리 자식에 대해 서로 물어서는 안되는 질문이 생겼다 한다(말하기를, 형벌의 강도에 적용해 ‘무기징역’, ‘사형’ 등에 처해야 한다고 한다). 그 질문이란, 자식이 어느 대학에 갔는지, 취직은 했는지, 결혼은 했는지 등이다. 달리 보면, 이 질문들은 사람끼리 만나면서 안 묻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들이다. 대학?취직?결혼만큼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중요한 것이 있던가. 이런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니 지금의 탁탁함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이렇게 생각이 미치면, 삼재에도 나름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재앙이란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그런 재앙이 들었다고 하는 것은 닥친 불행을 원망하지 말고 빨리 그런 시기가 지나가기를 겸손하게 기다리라는 주문일 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금이 첨단 과학시대라고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은 예측 불가능하게 돌아가므로 삼재 같은 무위(無爲)적 사고가 정신건강에는 적잖게 도움이 된다.

 
  이런 와중에 뒤늦게 찾아온 더위도 한 풀 꺾이고 새 학기가 찾아왔다. 앞서 삼재나 무위를 말했지만, 정말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당장의 새 학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준비 역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삼재가 끝난 다음 해에는 마치 기다림에 주는 상(賞)처럼 자주 ‘대운’이 든다고 한다.


  내년이라 해도 기껏 4개월 남짓 남은 것에 불과하므로 당장 이 위기가 끝나는 정도는 안 되겠지만, 극복의 조짐만이라도 확연히 볼 수 있다면 충분히 대운이라는 이름에 값할 것이다. 그럴 때에는 그래도 자유롭게 대학이나 취직, 결혼을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개인 차이가 크므로 조심스러운 태도는 잊지 않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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