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도생(苟命圖生): 구차스럽게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감.

  지난달 16일, 경북 칠곡에 위치한 캠프 캐럴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전역군인 3명(스티브 하우스, 로버트 트레비스 등)은 미국 애리조나주 소재 KPHO방송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했다. 그들은 “기지 내부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묻는 작업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맹독성 고엽제이며 1960, 70년대 베트남전쟁 때 사용돼 당시 주민들과 참전군인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지난달 19일, 환경부는 SOFA(한미행정협정) 환경분과위원회에서 고엽제 매립과 관련한 진실 규명을 미군 측에 촉구했다. 환경부 화학물질과 관계자는 “자료 확인, 내부 공동 조사, 환경 영향 조사 등을 진행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2일, 미군은 캠프 내 토양 시추 조사를 거부했다. 이로써 내부 조사가 얼마나 진실 규명에 효과적일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녹색연합 정인철 국장은 “드럼통의 외부 반출 사실이 기록된 문서를 확인했다”며 “드럼통을 찾기 위한 조사가 아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군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고엽제 매립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토양 시추 조사는 발이 묶인 상태다. 외교통상부 한미안보협력과 관계자는 “SOFA를 살펴보면 환경조약이 명확하지 않아 미국에 책임을 묻기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SOFA 부속문서를 보면 공공안전?인간건강?자연환경에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 중 미군 측이 치유해야 할 대상을 인간건강에 제한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기준과 개념이 모호해 피해상황을 입증하기 어렵다.


  구명도생(苟命圖生)이란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정부는 미국과 관련된 문제 앞에 서는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군 장갑차 사건, 동두천 노부부 폭행사건 등에서도 SOFA를 핑계로 미국은 마땅한 책임을 지지 않고, 우리 정부는 책임을 묻지 못한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국민들의 불안함을 해소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는 ‘구명도생’을 포기하고 큰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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