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부터 우리학교가 초유의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대행이라 함은 누군가가 임시로 직(職)을 대신한다는 뜻이므로 이 기간 동안에 학교는 정상적일 수 없다. 특히 조직의 장이 책임을 지고 수행해나가야 하는 새로운 계획의 입안이나 위기를 돌파하는 과감한 추진력 같은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물론 대학이 총장 하나로 되어있지 않을진대 그렇게 호들갑 떨 일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 이유나 (인사문제로 논란이 촉발된)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행체제는 분명 위기다.


새로운 총장을 맞아 새로운 기분에 들떠 있어야 할 시점에 이렇게 대행이 된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임용제청 후보자(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 때문이다. 총장직선제에 대한 한나라당과 교육부의 집요한 공격이 웅변하는 대로 그렇게 된 저간의 맥락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또 그런 소지를 우리 스스로 제공한 만큼 반성을 넘을 피해갈 도리는 없다. 마치 우리는 집단최면에 빠진 것처럼 무감각하고 무조심했기 때문이다. 설사 지금의 위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우리는 결코 이 ‘대행체제’의 수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또 지금 바로 목도하는대로 대행(부총장)의 임명문제가 양측의 논쟁이 되고 있다. 한 측은 왜 떠나는 총장이 새로운 인사를 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한 측은 그렇다면 공석으로 비워두어야 하느냐이다. 이는 겉으로 보면 행정상의 문제 같지만 사실은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대행체제의 기간이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재선거 관리의 (행정)주체를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다. 어떻게 봐도 유쾌할 수는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간 우리는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으며, 무언가를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극히 누군가에 대해 의존적이었다. 교수는 갑자기 단장이나 팀장이 되어야 했으며, 비즈니스분야의 프레젠테이션이 판을 쳤고, 마치 학교가 시장판으로 바뀐 듯 모든 것이 돈에 의해 판단되었다.


물론 이런 것에도 장점이나 논리가 없지는 않다. 온통 사회가 다 그런 판에 대학만이 고고하게 남아있기란 무망한 노릇이다. 졸업생의 취업률이 저렇듯 낮고, 기업들은 입만 열면 대학교육의 비실용성을 갖고 을러대니 전통적 대학은 올드한 패러다임이다. 지방대학이 서울하고 똑같이 놀면 매양 그 장단이지 않겠느냐도 있다. 당장에 떨어진 주어진 당근은 이러한 사고를 부추긴다. 머릿속에 여러 회의가 들지만, ‘나 혼자서는 어려워’라는 생각이 가로막는다.


그러나 이렇게 문제를 매양 미루다 보면, 어느새 원치 않은 지경에까지 와 있는 자신과 주변을 보게 된다. 이런 돌이킴이야말로 지금 같은 위기가 주는 선물인 것이다. 이 선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돌아와야 하는 길을 더 많이 갔을 지도 모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렇게 간 길을 돌아오는 인내와 그 과정의 자기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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