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본질은 생명이다. 농업은 농작물의 생산을 통해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왕성한 활동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류 발전의 근원적인 토대를 마련해왔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농업이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사의 이러한 중요성을 강조한 문구일 것이다.


  식량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은, 최근 국제시장의 농산물가격 상승 추세와 곡물 파동, 이와 맞물린 농업강대국들의 식량 무기화 움직임을 볼 때, 식량자급율이 30%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로서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단히 중대차한 문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녹색혁명이라 불리는 획기적인 다수확품종 개발 덕분에 쌀 부족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짐에 따라 농업의 먹을거리 공급이라는 본원적 기능에 대해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농업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공급해주는 본래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현대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범위를 확장해 가면서 농업은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우선 과거의 농업이 단순히 우리의 고픈 배를 채워주는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소비자가 요구하는 보다 안전하고 고품질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도시 소비자들의 식탁은 값싸고 저급한 수입농산물이나 농약에 오염된 국내농산물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그들은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연의 생명력이 넘치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갈망하고 있다. 이 시대의 농자(農者)에게 주어진 사명은 고객인 소비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그들의 건강과 웰빙에 기여하는 것이며, 동시에 나라의 근본인 국민건강과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농업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식량공급 외에도 다원적 공익 기능이라 불리는 여러 가지의 기능도 함께 수행한다. 예를 들어, 논은 홍수기에 빗물을 담아 땅 속으로 스며들게 하여 물 피해를 줄일 뿐만 아니라 유용한 지하수원을 만들고, 농작물은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대기를 정화시키며, 농촌의 논과 밭은 큰 비로 토양이 유실되는 것도 막아준다. 농촌은 전과 답이 어우러져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고,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남아 있는 터전이며, 아이들이 생태계와 전통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현장이기도 하고, 메말라가는 도시민들의 정서를 순화시켜주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농업이 국민의 건강 증진과 자연환경 보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서는 작금의 에너지, 비료, 농약에 의존하는 형태에서 탈피하여 지속가능한 농업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1960년대의 증산을 목표로 한 녹색혁명이 제1의 농업혁명이었다면, 제2의 농업혁명은 잃어버린 녹색을 되찾는 친환경농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혁명은 선구자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시작이 되고 있지만 정착되기에는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성공적인 친환경농업의 정착을 위해서는 농업 내부에서의 노력과 함께 소비자인 도시민들의 이해와 지원도 요구된다. 친환경 농산물에 대해서는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자세, 환경을 보전하려는 농업인의 노력에 대해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친환경농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녹색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농업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천하의 새로운 근본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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