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 선 지 20여 년이 넘었지만, 나는 항상 새로운 학기를 설레임으로 시작한다. 눈빛 반짝이는 학생들을 만날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 초점 없는 눈동자를 마주치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게 된다. 내 강의가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근래에 들어 무표정한 학생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는 젊음의 특권이지만,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4년 뒤 취업에 1점이라도 유리한 스펙 쌓기에 내몰려, 젊음의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애당초 모르는 것 같다. 교정에 휘날리는 플래카드도 거의 대부분 취업과 관련된 것이다. 대학 입시 때 겪었던 학습효과까지 더해, ‘왜’나 ‘무엇’을 생각해 보기도 전에 남들보다 더 빨리 취업 경쟁에 뛰어든다. ‘내신, 비교과, 외국어, 수능, 논술’이 ‘학점, 토익, 어학연수, 각종 자격증, 인턴 경력’으로 레퍼토리만 바뀌었을 뿐, 0.1점에 울고 웃으며, 당락이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일의 반복이다.

 사회인이 되고 나도, 잘리지 않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노인 복지시설에 입소하기 위해, 묘지로 쓸 터를 배당받기 위해, 온갖 이유로 평가를 받고 점수 계산을 해야 한다. 경쟁 사회에 살면서, 평가나 점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중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되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평가받는 분야를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 점수의 기준을 내가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학에 들어올 때나 졸업하고 나서도,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혹여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선택한 전공이라도, 한번 배운 지식의 유통 기한이 5년이 넘지 않는다. 그러니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스로 이러한 질문하게 되면, 우선 주변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호기심’을 가져보자. 호기심이 있어야 문제점이 보이고, 내가 좋아하거나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를 가늠할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그 문제점을 내가 해결해 보고 싶으면,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실천’해 보자.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보이고, 해결해 보고 싶다면 ‘열정’을 바쳐 볼만한 분야가 아닐까?
 
  가끔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이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공담을 전하던 ‘성공시대’가 나와 거리가 먼 신화처럼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내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볼 수 있다. 생선을 다듬거나, 빨랫줄을 만들거나, 신문 배달을 하거나 달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든, 잘 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호기심을 갖고 문제를 발견하며, 열정적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그 일이 반드시 적성에 맞아서 잘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예의 호기심, 실천, 열정으로 자신이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갈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학 생활, 별생각 없이 남들과 똑같이 점수 따기에만 몰두했으나, 남들보다 못한 성과를 거두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잠시 비켜서서 주변을 관찰하자. 강의실 안이든 밖이든 문제가 보이는 곳을 찾아, 1년 만이라도 정말 열심히 노력해 보자. ‘달인’이 되든 ‘전문가’가 되든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삶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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