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성매매 집결지 120년 토론회 열려
-100년 전 기사 번역해 당대 현실 지적
-"성매매 집결지의 흔적 상실되면 안돼"
-"인간답게 살도록 자활 대책 마련 시급"

“무턱대고 지운다고 지워지는 과거가 아닙니다” ‘부산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꼽히는 완월동의 재개발이 추진(<채널PNU> 2023년 8월 21일 보도) 중인 가운데, 일방적인 재개발의 추진을 비판하고 공익적인 개발 방향을 논하는 자리가 열렸다.

지난 10월 27일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 120년: ‘완월동’의 장소성과 현재’ 토론회가 진행됐다.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부설 ‘완월기록연구소’가 연 토론회에선 완월동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세운다는 결정을 두고 완월동의 역사성과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이기숙 이사장 △대구여성인권센터 정박은자 사업감사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신미라 강사 △제9대 부산광역시 하명희 서구의회의원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의 변정희 상임이사 등이 참석했다.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 120년 토론회를 진행하는 모습 [최윤희 기자]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 120년 토론회를 진행하는 모습 [최윤희 기자]

토론회는 ‘왜 완월동이 공익적인 관점에서 개발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제기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양 최대의 성매매 집결지’로 불려 온 완월동을 피해 여성들에 대한 구제 없이 그저 ‘덧씌우기’ 식으로 처치하려는 부산시의 방향에 대해 문제를 던졌다. 현재 승인된 개발 방식은 기존 완월동 부지에 재산을 가지고 있던 포주들의 배를 불리는 악순환에 그친단 것이다. 이들의 논의는 ‘그렇다면 공익적인 개발 및 대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로 이어졌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참석자들은 과거의 언론 기사들을 통해 완월동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분석했다. 부경대 신미라(정치외교학) 감사는 일제강점기 공창제 시행 첫해인 1916년 부산일보 기사 37건을 번역해 당시의 완월동과 성매매 인식을 설명했다. 해당 기사는 △녹정(現완월동) △목도(現영도) △초량의 유곽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성병을 지속적으로 검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부 기사에선 ‘몸을 팔수밖에 없는 이들은 인간이라는 이름뿐,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묘사가 드러났다. 신 감사는 “이를 통해 성매매 남성을 보호하고 여성을 착취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이들은 완월동의 미래가 장소 상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소의 흔적을 아예 없애는 것은 그곳에 삶의 터전을 둔 피해 여성과 공공성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업성만 생각한 도시재생이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하명희 서구의회위원은 “사업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완월동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여성인권센터 정박은자 사업감사는 대구 ‘자갈마당’ 폐쇄의 사례를 들어 완월동이 일방적인 ‘장소 없애기’에 그쳐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사회 밖으로 무작정 내보내 고립시킬 수 있는 문제란 것이다. 정 감사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성매매 공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지만, 동시에 일시적인 삶의 터전으로서 기억되는 역할을 한다”며 “대구의 경우 자갈마당의 흔적이 아예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결국 피해 여성들이 자활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논의가 오갔다. 여성인권지원센터 변정희 상임이사는 “성매매 집결지의 개발이나 폐쇄와는 상관없이 ‘여성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여성 자활 대책 마련을 위해 완월기록연구소에서 활발한 지원과 기록 활동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정책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지자체 차원에서의 정책 마련은 미흡한 실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 의원은 2019년 부산시에서 ‘성매매 집결지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립·자활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2023년 현재까지도 아무런 예산이 편성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경남 창원 △경기 성남시 △제주 제주시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는 등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성매매 피해자 여성에 대한 △지원시설 △생계유지비 △주거비 △직업훈련비 등 자활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현재 승인돼 추진 중인 주상복합건물 건설을 비판하며 지속적인 반대 의사를 내비칠 것을 표명했다.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이기숙 이사장은 현재 완월동 입구에 부착된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서부 부활 새로운 미래의 건설을 축하한다'고 적힌 현수막을 언급하며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는) 지운다고 지워지는 과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완월동의 공익적 재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역설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