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춥고 쌀쌀한 밤에 괜히 돌아다닌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그날 밤 양쪽겨드랑이에 손을 끼고 볼에 닿는 찬바람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런 쌀쌀하고 어둡고 조용한 밤과 어울리는 사람. 이런 밤이면 분명 그도 몸을 웅크린 채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을 것만 같아 나는 괜시리 마음이 뭉클해져 동네 몇 바퀴를 더 돌다 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추위가 성큼 다가올 때면, 나는 언제나 기형도 시인이 떠오른다. 그의 시에선 화자가 추운날씨에 힘들어 하는 상황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가난했던 시인 자신의 체험이기도 하나, 세상의 무서움과 두려움 가난한 아버지와 위태로운 어머니, 무너져버린 사랑, 자신에 대한 좌절, 우울, 공포 등 자신을 괴롭게 하는 현실의 벽과 마음의 중압감들이 ‘추운 날씨’로 표현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무서워서 늘 벌벌 떨었을까. 그것도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괜히 담담한 척하면서 말이다.
 
  그는 자기가 살아있는 이유라며 사랑해 마지않는 시들을 쓰면서 참 많이 추웠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시를 쓰고 있을 그의 외롭고 쓸쓸한 등이 그려진다. 어쩌면 작시할 때의 그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스물아홉 갑자기 저 세상으로 홀연히 가버린 것은 아닐까. 새벽의 심야극장 뒷자석에서.
 
  그의 주요 화두인 두려움과 좌절 속에는 여타 작가들과는 달리 희망과 긍정이 극히 드물었으며 끝없는 좌절과 부정만이 남아있다. 그래서 더욱 시를 쓰고 있을 그의 조그마한 등이 애처로운 것이다.
 
  이러니 내가 추운 날씨만 되면 괜히 그의 시집을 뒤적일 수밖에. 헤아릴 수 없는 시인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어야 될 것 같아서 말이다.
 
  그의 마음을 공유하다 괜시리 감상적이 되어 추운 밤거리를 걷다 감기만 걸리지 않는다면, 그와 그의 작품들과 함께하는 이 가을은 꽤 괜찮은 시간이 될 것이다. 기형도 시인, 오늘밤 또 만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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