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기가 일본이구나." 내 생애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경을 벗어났던 그 날, 비행시간 약 35분 만에 도착한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처음 든 생각은 '한국이랑 다를 게 뭐람' 이었다. 아무래도 나와 똑같은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단지 달랐던 건 그들이 쓰던 언어와 도로 위의 차들이었다.

  일본에서의 첫 5개월은 외롭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토플점수로 일본 사가(Saga)대학의 SPACE라는 외국인 특별 프로그램으로 교환학생을 오게 돼 일본어를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같이 있던 한국인 4명 중 나를 제외한 3명(다른 프로그램으로 온)은 일본어가 전공이었기 때문에 덜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프로그램의 외국인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며 지냈지만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을 때는 언어 때문에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같이 놀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나고 일본 생활에 익숙해져갈 때쯤 빵집에서의 아르바이트와 일본인 아줌마 세 분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드리는 일을 맡게 되었다. 일본어 때문에 힘들어하던 나를 위해 친구가 소개시켜 준 자리였다. 일본어를 할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의 나의 일본어 실력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점점 늘어갔고 그 결과 JL1(일본어초급반)에서 JL3반으로 바로 진학할 수 있었다. 언어에 대한 자신감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났고 그 결과 유학생회장까지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 교환학생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외국인 친구들과 지내면서 그들의 풍습을 알게 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된 것이었다. 11개국에서 온 친구들(미국,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과 지내다보니 자국의 문화(특히, 음식과 남녀 간 연애이야기)에 대해 소개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많았다. 놀랐던 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 프로그램 친구들 중에 술을 마시는 여학생이 프랑스 친구와 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친구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또 대만 친구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며 대학교 모임에서도 음료수를 마신다고 했다. 놀랐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결혼에 대해서도 가치관이 조금 달랐다. 연애결혼, 중매결혼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연애결혼을 선호하는 나와 다르게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중매결혼을 선호한다며 그런 중매결혼이 자신을 나쁜 남자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말했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느꼈다.

  ‘SPACE’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각자 귀국해야 할 때, 친구들과의 우정은 더 깊어져만 갔다. 처음 몇 달 서로 어색하기만 했던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고 같이 가지 못했던 여행은 더욱 아쉽기만 했다. 언젠가 꼭 보자며, 서로의 연락처를 적어들고 울먹거렸다.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약속을 하고 안전한 귀행이 되길 빌어줬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가(Saga)앓이'를 했다. 작았던 시골마을에서 느꼈던 많은 사람들의 따뜻했던 마음, 언어는 100퍼센트 통하진 않지만 늘 좋았던 친구들. 그 해 1년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언제나 그리워 할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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