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15일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이라는 전대미문의 선언문을 낭독한 적이 있다. 선언문의 요점은 인문학의 현실, 즉 인문학이 그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을 받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인문학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언문은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선언문에서도 인문학이 가진 오만이 드러났기에 한순간의 호기심 외에는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철학이나 수사학 등 인문학은 존재했고, 현재도 그 이름을 달리 할 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인문학은 우리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윤리와 도덕기준을 제시해주는 학문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요구된다. 그렇기에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지금 현재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 상태로 가다가는 어느 날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공룡 같은 과거의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인문학이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삭막한 환경이라면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다른 학문도 그 존립을 장담할 수 없다.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인문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되면, 개인의 발전, 사회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 곧 인간의 위기인 것이다.


  미국의 러트거스 대학 영문과 교수인 커트 스펠마이어는 자신의 저서『인문학의 즐거움―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원제: Arts of Living: Reinventing the Humanities for the Twentieth-First Century)에서 지금 미국 인문학이 직면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진단한다. 이 책에 의하면 몇몇 권위자들이 만들어낸 초(超)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전문가만 이해하는 글을 쓰는 것이 주류가 되면서 인문학은 세상과 대중에게서 고립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문학은 세상의 문제들로부터 동떨어져 단순히 텍스트에 몰입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고 안주하기보다는 세상과 관련된 것, 작은 세계들이 모여 모든 것과 연관을 맺는 것, 이것이 인문학이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모든 동서고금의 양서를 읽다 보면 인문학적 소양이 길러지고, 그러다 보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좋고, 다른 문학 작품도 좋고, 난해한 철학책과 역사책도 좋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해 먼저 고찰한 내용의 책을 읽어야 인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이자 세계적인 대부호인 빌 게이츠는 인문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그는 스스로 “인문학이 없었더라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아날로그 시대에도 그러했고, 디지털 시대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인문학적 사고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