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뜨겁던 여름이 지나가고 다시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아이들이 등교하는 소리 때문인지 오늘 아침은 일찍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다가선 창가엔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음악에 맞춰 행진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이사를 하는 곳마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멍하니 학교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이미 부쩍 키가 커버린 어른은 저곳과 어울리지 않음이 어색하고 아쉽기만 했다.


  그런 내가 작은 용기를 낸 것은 2년 하늘이 파란 어느 가을날이었다. 주말 텔레비전이 지루해지는 4시경, 무슨 용기가 나선지 달랑 필름카메라 하나 들고 초등학교로 나섰다. 한동안 멍하니 운동장 가운데에 서 있었다.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한 어른은 공을 차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심 ‘여기로 패스’라고 계속 외쳤다. 그 바람이 간절했는지 한 꼬마가 공을 보냈고 어느새 함께 공을 차고 사진도 찍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형. 나 이거 주웠어.”라며 한 아이가 내게 500원짜리를 보여주었다. 주변의 아이들도 모여들었다. 누군가 잃어버렸으리라. 그리고 이 아이들은 곧장 100원짜리 불량식품을 사 먹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처구니없이 어긋나 버렸다.
  “형, 이건 내 것이 아니니까. 다시 제자리에 두고 와야지.”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주변의 아이들도 동의했고 아이는 원래 있던 운동장의 한 구석에 500원을 두고 왔다.


  내가 그날에 만난 아이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순수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아무런 말도 못한 이유는 어느덧 세상에 때가 묻어버린 내 순수함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날의 추억과 배움을 가지고 어느덧 졸업을 한 학기 앞두었다. 4년이라는 공허한 시간만큼 텅 빈 시간표를 보며 매일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에서 더 이상 그때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에 스스로 너무나 개탄스럽다. 그날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닐까. ‘취업’이라는 틀에 나를 ‘모범생’으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지금 나는 그때처럼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주변 초등학교로 가고 있다. 가을 미풍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불어와 날 무척이나 들뜨게 한다. 발걸음은, 그래!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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