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상 인서트]

1979년 10월 15일, 우리 대학에서 유신 철폐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민주선언문과 민주투쟁선언문이 배포됐습니다. 이를 읽고 공감한 학생들은 10시 경 도서관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다려도 배포한 학생이 나타나지 않자 다음 날인 16일, 다시 도서관 앞에 모여 부마민주항쟁을 시작했습니다.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학생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내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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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당시 상학관이었던 자연과학관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을 지나며 ‘독재타도’, ‘유신철폐’등의 구호를 외치고 도서관으로 행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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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자막 : 제1사범관(구 인문사회관)] 경제학과 학생들이 ‘선언문’을 배포한 뒤 도서관[자막 : 건설관(구 도서관)으로 이동해 낭독 후 처음으로 시위를 벌였습니다.

[AI 더빙, 자막 : 당시 증언]

정광민(경제학 78, 졸업) : 내가 시위에 대해 정말로 프로 운동권도 아니고, 대학 2학년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시위를 하려면 선언문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거 같고. 그렇게까지 내가 문장가도 아니고 그런 문장이 바로 뭐 즉석에서 나왔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런데 어딘가 적어놓은 거 같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내가 좀 다듬어서 그 친구들한테 보여줬어요.

김성진(무역학 79, 졸업) : 편집장이 저보고 부르더라고요. 아침에 올라올 때 10시 경에 구도서관 앞에서 모여서 집회를 하겠다는 찌라시를 봤다고. 그 당시에 부산대학은 데모를 크게 안 하는 대학이었죠. 집회를 주최하는 선배 학생 몇 분이 거기서 구호를 외치더라고요. 학생들이 거기서 시끄러워지니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가지고 내다보다가, 점점 거기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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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서는 수천명의 부산대 학생들이 거리로 진출하기 위해 진압부대와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면서 진압하려고 하자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항쟁에 합류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7000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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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넉넉한 터[자막 : 넉넉한 터(구 운동장)]에서는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진압부대는 교정으로 들어왔고, 학생들을 몰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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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자 우리 대학 학생들이 교문을 채우고 있던 자물쇠를 부수고 거리로 처음 진출했습니다. 이 때 시내에서 집결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 시내로 향합니다.

[AI 더빙, 자막 : 당시 증언]

이연숙(무역학 79, 졸업) : 나가서 버스 타고 부산역으로 갔어요. 부산역에서 ‘이것을 하기에는 우리가 인원이 작아서 안 된다. 동아대학으로 가자.’ 그래서 동아대학으로 가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같이 막 뛰어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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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학생들의 시위는 경남 마산으로 번졌고 이윽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향한 반독재 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PUBS 뉴스 신지영입니다.

 

취재 : 김현경 기자

촬영&편집 : 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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